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304수 시를 읽는 이유는 가벼운 이야기처럼 삶을 살기 위해서
그대아침
20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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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이 한 줄이 전부였다. 함민복이 쓴 시다. 어떤 긴 이야기의 시작 같기도 한
한 줄이고, 오래된 연인의 마지막을 알리는 한 줄 같기도 했다.
스탠드를 켜놓은 채 지쳐 잠든 한 사람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올랐다.
그날 이후 시집 한 권 사본 적 없는 내가 매일 시 한 편을 읽기 시작했다.
시는 상대적으로 길이가 짧아 소설이나 긴 글이 주는 부담이 없었다.
멈추어 곱씹어 읽게 한다는 점에서 하루의 분주한 삶에 거는 브레이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이 세상에 시인과 시집, 한 편의 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주제넘기도 하고 한없이 어리석기도 한 이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매일 잠들기 전,
일을 시작하기 전, 헛헛한 마음으로 아침을 시작할 때 한 편의 시가 가져다준
위로와 용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는 내가 아는 것보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역할을 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아직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은 그네, 
그 반동 그대로 앉는다 
그사람처럼 흔들린다 

문동만의 '그네'라는 시를 읽자 내 몸에 반동이 느껴졌다. 어른들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무심코 그네를 탄다. 그때 마음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네에서 내려와서도 마음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마치 두고 온 그 그네처럼.
그래서 시인은 누군가의 몸이 떠나지 않았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시든 음악이든 그 쓸모는 존재 자체에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을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논리로 설득하긴 쉽지 않다.
음식의 열량을 칼로리로 표시하듯, 주식의 가치를 전광판에서 읽어내듯
모든 걸 숫자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에게 시의 아름다움과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은 무모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조금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나태주 시인이 말했듯 가벼운 이야기처럼 삶을 살기 위해서다.
아침에 본 새 한 마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떠들며 노는 소리처럼
하루를 살고 싶어서다. 잠시 발을 멈추기 위해서다.

*박요철의 <스몰 스텝>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