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은 게 체한 모양이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럴 때면 어머니는 손을 내보라고 하시곤 했다.
그러고는 엄지와 검지 사이를 손으로 꾹 누르셨다.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너무 아파서 손을 빼려고 해도 놔주지를 않으셨다. 계속 누르면 통증도 익숙해지는지
차츰 적응되었고, 그래서 포기하듯 손에 힘을 빼게 됐다.
“조금만 있어 봐라. 금세 꺼억 할 테니.”
주문 같은 그 말이 빠지지 않았고, 그러면 진짜 신기하게도
주문의 피리 소리에 고개를 쭉 빼는 뱀처럼 트림이 쑥 나왔다.
지금은 어머니와 떨어져 있어 엄지와 검지를 눌러줄 사람이 없다.
아내가 눌러주겠다고 하지만 영 힘이 시원찮다. 내려가야 할 것이 내려가지 않고
멈춰 서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먹을 때부터 어딘가 께름칙한 걸 먹었던
그 이물감이 남아 있어서이기도 하고, 시간에 쫓겨 급하게 먹느라
제대로 씹지 않고 꿀꺽 삼킨 것이 사단이 되기도 한다. 때론 너무 추운 곳에서
벌벌 떨며 먹으면 잔뜩 긴장한 몸이 음식이 지나는 길을 좁혀 걸리기도 하고,
때론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아예 음식 길을 막아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가끔 이렇게 표현한다. ‘음식이 목에서 넘어가질 않아?’
몸은 자연과 같아서 의식하지 않고 흘러갈 때 가장 건강하다.
하지만 물리적, 정신적 충격 같은 것으로 의식이 거기에 집중되게 되면
그 자연스러운 흐름이 깨져버린다.
그래서 체했을 때 나는 내가 무슨 일로 어디에 의식을 두고 있는가를 생각한다.
지금 집착하는 건 뭘까 들여다보려 한다.
무언가 나를 괴롭히는 일이 벌어졌거나 그래서 미운 사람이나,
미운 감정이 생겼을 때 몸은 음식의 흐름을 막아 세우며 내게 말한다.
‘너 뭔가에 골몰하고 있어?’
그럴 땐 어려서 내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눌러주던 어머니의 손이 그립다.
순간 골몰하고 집착하던 내 의식을 통증 쪽으로 온전히 옮겨놓는 매운 힘이,
자상하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조금만 있어 봐라. 금세 꺼억 할 테니”라고 하셨던
주문 같은 말의 단단함이, 무엇보다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싫은 감정이
이물감처럼 남아 있는 내게 괜찮다고 하듯 등을 토닥이던
그 손이 그립다.
*정덕현의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