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330월 더 나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봄
그대아침
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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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녔던 고등학교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학교 건물 안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정원은 푸르른 나무들이 둥글고 촘촘하게 옹위하고 있었다.
정원은 새하얀 하루치의 햇빛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햇빛이 다정하게 포란하듯 내려앉은 곳. 그곳은 언제나 환한 빛이 감돌아 포근하고 안온했다.

K와 나는 궂은날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매일 갔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매점에서 과자 한봉지를 사 들고서는 정원을 걸었다.
한걸음 한걸음 아끼듯 정원의 가장자리에 촘촘히 발자국을 눌러 담다가
한낮의 햇살에 눈꺼풀이 꾸깃꾸깃해지면 햇빛을 피해 그늘받이 등걸에 걸터앉았다.
너는 대학 가면 뭐 하고 싶은데, 커서 무슨 일하고 싶은데,
근데 오늘 아침에 옆 학교 그 애가 너 뚫어져라 쳐다보고 지나간 거 아느냐 같은 것들.
그런 이야기에 마음은 너울 치는 고양감에 금세 점령당했다. 이야기들 사이사이로 꽃잎이
너울거려 꽃멀미가 날 것 같던 그 시간, 그 마음들은 여리고 보여서 지켜주고 싶은 마음들이었다.
두서없이 들썽하는 꽃잎들처럼 나도, K도 슬픔과 기쁨을 경계 없이 오가며 울고 또 웃었다.
교복에 벚꽃 향을 잔뜩 묻혀서 교실로 돌아가곤 했던 충일한 어느 봄날이었다.

봄이 오고 벚꽃이 흐드러진 날이 오면 어김없이 학교 정원을 떠올린다. 
그 사소한 순간이 내 기억에 이렇게 깊이 새겨질 줄 몰랐다고 매번 새삼스레 놀라면서.
그때 그 어린 소녀의 걱정과 기대들은 내 삶에서 재생되지 않았다.
대신 그 이후로 수많은 순간과 인연들이 겹겹이 겹쳐 예상 못한 행운과 불운이 만들어졌다.
기꺼이 나타난 행운과 불운은 모두 머물 만큼 머물렀다 무심하게 지나갔고,
어떤 것들은 물거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행운과 불운은 모두 공평하게 사라진다는 사실,
그것은 내게 위안이 되었다. 다시 괜찮아지겠지. 정말 괜찮아질 거야.
언젠가 모든 것은 0의 상태에 가깝게 수렴될 테니까. 그런 믿음이 이제 있으니까.

봄이 오면 정원 속 우리가 느꼈던 안온한 고립감이 떠오른다.
작고 가냘팠던 소녀들의 연대가 아직도 내게 괜찮다고,
우리는 더 밝고 나은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해 주는 봄.
그 봄은 언제나 다시 찾아온다.

*신효원의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