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 마른 미역이 손가락을 찔렀다. 뾰족한 검은 미역 조각을 빼내자 핏물이 몽글 맺힌다.
손가락을 입속으로 가져가 핏물을 빨아 뱉는다. 무슨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는 것인지 상상도 못한 일에 신경이 곤두서고 마음이 뒤죽박죽이 된다.
고향친구가 남해 바닷가에서 걷어 말린 미역은 햇볕에 제 몸을 너무 말렸나보다.
몸의 수분을 얼마나 말렸으면 이렇게 빳빳해져 가시로 태어났을까.
살다보면 자신이 온통 가시투성이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복어 몸처럼 몸 안 가득 독을 머금고 온몸에 가시를 세운다. 그런 밤이면
불면으로 뒤척이며 평상심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지 자책하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도 자꾸 마음을 다치다보면 다친 상처자리에 씨눈이 달렸는지
뾰족한 가시의 싹이 돋아난다.
조심스럽지 못한 행동 탓일까. 좀 더 신뢰감을 주지 못한 탓일까.
이런저런 원인들을 자신에게서 찾으며 불린 미역의 물기를 짜낸다.
일을 하면서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복작거린다. 참기름 한번 휘둘러
쇠고기를 복복 볶아내다 쌀뜨물을 붓는다. 노름한 기름이 국물 위에 떠오르는데
이해하자는 머리와 괘씸하다는 가슴이 달리 반응하는 지금의 나를 닮았다.
센 불에 미역을 끓이다 불길을 줄인다. 시간이 지나면 풀썩거리며 끓어대던 미역국처럼
숨이 조금 죽어갈까. 뭉근히 끓이다 보면 이파리는 물론 미역줄기까지도 노골해지지 않던가.
뽀얗게 우러난 미역국 한 그릇처럼 순해지고 부드러워지는 데는 자정과 뜸들임의
시간들이 필요한 법이다.
빳빳한 한줄기의 미역이 한 그릇의 미역국으로 탄생한다. 부드러운 것이 가시가 되기도 하고
상처를 주던 미역줄기가 뽀얗게 우러나 마음을 다독이는 한 그릇의 음식이 되기도 한다.
서로가 상처를 주는 줄 모르고 한 행동도 있고 알고도 한 푼의 이익이 앞서 한 행동도
있을 것이다. 믿었던 것들의 배신은 아프다. 하지만 내 마음이 더 이상 시들어 말라
또 다른 누군가를 향한 흉기가 되면 안 되는 일이다. 이래저래 실컷 고아지다 보면
뭉근한 한마디 웃으며 툭 뱉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려나. 한 그릇의 미역국을 먹으며
내 속에 든 가시를 힘껏 밀어내 보려한다.
*남태희의 <부드러운 것들이 뾰족해지는 시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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