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06월 엄마, 아빠를 더 많이 새삼스러워해야하는 이유
그대아침
2026.04.06
조회 52
한 쇼핑몰에서 그럴듯해 보이는 옷을 찾아낸 뒤 선구자들의 발자취를 더듬었다.
생각보다 타이트하지만 맘에 들어요. 예쁘네요. 많이 파세요, 
색깔별로 쟁이려고요, 같은 평범한 후기들 틈에 눈에 띄는 글이 있었다.
"엄마 선물로 샀는데 좋아하셨어요. 잘 어울리고 무척 아름다웠어요."
내 눈에 걸린 말은 "아름다웠어요"였다. 아름답다는 말은 흔히 가족을,
특히 부모님을 묘사할 때 쉽게 나오는 표현이 아니다.
아름답다는 표현은 신이 공들여 빚은 것 같은 환상적인 자태의 배우나,
훌륭한 심미안으로 창조된 거장의 작품 내지는 혼을 압도하는 대자연에나 쓰는 말이지
부모님께 바치기에 다소 머쓱한 말이었다.

커다란 소음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귀가 무뎌지고 밝은 빛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눈이 적응한다. 익숙한 데서 낯선 자극을 느끼려면,
즉 줄곧 보던 이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그는 새삼스러워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세상천지 부모님만큼 덜 새삼스러운 분들이 어디 있을까.
태초에 내가 접한 첫 번째 인류이자 일평생 가장 많이 들여다봤을 얼굴 낯섦과
생경함의 저 반대쪽 끝단에 있는 엄마의 얼굴, 아빠의 얼굴.

당장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보면 막 피기 시작한 봄꽃, 근사하게 플레이팅된 음식,
힙하다고 이름난 카페의 정경 따위만 나오지 아무리 뒤져도 부모님의 흔적이라고는 없다.
상당량의 조카 사진과 영상을 뒤적이다 곁가지로 찍힌 엄마와 아빠의 흔적들을 겨우 찾았다.
주연은 엄연히 아기였고 당신들은 곁에 있다가 얻어걸려 찍혀 있었다.
존재론적 숙명에 의해 우리는 언젠가 작별할 것이고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내가 당신들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진정 기록하고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은 부모님의 음성과 표정, 자세와 몸짓이었다.
언젠가 사무치게 그리워할 독특한 억양과 입버릇,
"인혜야" 하며 나를 부르는 목소리와 나직한 웃음소리.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젓가락을 쥐는 손 모양,
의자에 느긋이 앉는 자세와 개성 있는 걸음걸이.
진짜 차곡차곡 갈무리해둬야 할 것은 그런 것들이었다.
누군가가 새로운 옷을 어머니께 선물하고 새삼 아름다움을 느꼈던 것처럼,
그리고 그 마음을 기록해 둔 것처럼,
나도 엄마, 아빠를 더 많이 새삼스러워해야겠다. 

*홍인혜의 <고르고 고른 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