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은 벌목한 나무를 가득 실어가고 있었다. 일방통행로 같은 외길에서
우리가 탄 버스는 트럭 꽁무니를 천천히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트럭의 꽁무니라고 하지만, 정작 트럭은 보이지 않고 길게 드러누운 나무들만 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로수와 잿빛 하늘 그리고 나이테와 빗방울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이테는 나무의 신분증이 될지도 모른다. 갈색의 치밀하고 선명한 무늬는 나무의 태생과
연륜과 성질을 보여주는 단서가 되는 셈이다. 원산지는 추운 지방이었고,
세월을 보낸 나이는 몇 살이며, 곧고 단단한 나무였다고 크고 작은 동심원들은
그렇게 메아리치며 고향 백두산을 떠나고 있었다.
어딜 가나 예기치 않는 상황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은, 나의 얼굴도 나의 생각도 행동도
아니다. 사진과 생년월일 그리고 주소와 지문이 찍혀있는 주민등록증이 자신을 대변한다.
나무의 모든 흔적을 나이테가 품고 있듯, 사람의 지문에도 그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지문은 나이테와도 닮아 있었다. 파상의 무늬, 파동의 소리, 파장의 밀도가 아우성치듯
눈을 어지럽혔다.
<뿌리>의 작가 앨릭스 헤일리는 다섯 살 생일 때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하나 받았다.
수령 200년의 나이테를 가진 거목 한 조각이었다. 할아버지는 나이테를 가리키며
“얘야, 여기는 노예 해방이 선언된 해이고, 요쪽은 너희 부모가 다닌 레인대학이 설립된
해란다. 그리고 네가 태어난 해는 껍질 바로 안쪽 여기란다.”라며 앨릭스 헤일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이 나무 조각이 그를 작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가계를 9년 동안 추적해서,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잡혀온
쿤타킨테의 6대에 걸친 모계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뿌리를 나무의 나이테에서 찾았고,
나이테는 그에게 인생의 지표가 되었으며 희망이었다.
나에게도 나이테가 보인다. 거울에 비친 잔주름과 내 의식을 지배하는 나이가 그것이다.
사람의 얼굴은 세월의 연륜이 만든 나이테이다. 분위기는 그 사람의 지문인 셈이다.
나의 얼굴은 어떤 자기 증명을 할 수 있을까. 기왕이면 아름답고 섬세한 목리를 닮고 싶다.
*박영란의 <자기 서술법>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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