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515금 수많은 책과 선생님의 말이 누군가의 인생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
그대아침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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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봄날이었다. 은평구의 한 도서관에서 저녁 강연을 하는 날이었다.
강연을 끝내고 가방을 챙기는데 웬 젊은 남자 둘이 강연장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선생님! 노경실 선생님!”
혹시 사람을 잘못 봤나 하고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청년 하나가,
한눈에 봐도 거금을 들었을 법한 풍성한 꽃다발을 내밀었다.

두 사람의 기억에 의하면 십오 년 전, 인천의 가장 열악한 동네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무너진 가정의 두 소년은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야학과 공장, 뒷골목을 전전했다고 한다. 십오년 전 그날, 그들은 야학에서 만난
대학생 선생님 손에 강제로 끌려와 내 강연을 들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좀처럼 강연에 재미를 붙이지 못해 짜증이 날 무렵 책을 통해
인생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호시탐탐 도망갈 기회만 엿보던 소년들은
강연 속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두 아이 모두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을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했다. 게다가 우연인지 그중 한 아이는 행운권에 당첨되어
내가 쓴 동화책을 선물로 받아 갔다. 두 아이는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까지 무사히 마친 후에
한 사람은 사회복지사로, 다른 한 사람은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만남에서 화사한 스카프와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깜짝 놀랐다.
십오 년 전 세상에 나온, 나의 작은 동화책이었다. 첫 장을 넘기자
내가 쓴 메시지가 있었다.
‘책 속에서 꿈을 찾고, 책을 통해 꿈을 이루고, 책과 함께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그때 만약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저희도 여느 비행 청소년과 다르지 않게
자랐을 거예요.”

단 몇 권의 책이 이 아이들에게는 부자 아빠, 열혈 엄마, 인맥 넓은 조부모 못지않은
후원자이자 응원군이 된 셈이다. 빈부귀천 없이 도서관에 가기만 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수많은 책들이 선사한 인생이다. 십오 년 전, 
그 누구도 두 아이가 스스로 우뚝 설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깜짝선물처럼 나타난 두 청년을 보며 나는 밤하늘의 반짝반짝 빛나는
별들을 마주한 느낌이 들었다. 

*동화작가 노경실 산문집 <사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힘>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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