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520수 기억을 부르는 그 냄새가 우리를 길러왔음을
그대아침
2026.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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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네 식구는 경기도 안양의 단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20평대이고 방은 세 개다.
할머니 방, 부모님 방, 그리고 내 방. 사실 내 방은 방이 아니다. 
거실인데 지낼 때가 없어서 방처럼 쓰고 있다. 그래서 내 방만 요즘의 형식인 
여닫이문이 아니라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다. 심지어 나무홈이 낡아서인지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가장자리로 미세한 틈이 생긴다.
그 틈 사이로 참 많은 것들이 새어 들어온다.

누군가와 같이 산다는 건 교류를 원치 않아도 자동동기화가 된다는 뜻이다.
특히 이렇게 작고 낡은 집에선 온갖 생활 소음, 뒷담, 불빛, 질병 등이 문턱을 넘나든다.
그중 가장 괴로운 건 내가 먹지 않은 음식이나 먹고 싶지 않은 
음식에 대한 냄새를 강제로 맡는 일이다. 아침에 커피와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는 나와 달리 우리 가족은 라면을 좋아해 아침부터 파나 떡을 넣고 
간혹 만두까지 넣어 먹는다. 일부러 다채로운 향의 원두를 준비해 보지만
라면의 자극적인 냄새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상쾌하고 아름다울 뻔한
나의 아침엔 금이 가고 마지막 화룡정점처럼 문 너머로 면발을 흡입하는 소리와 
얼큰한 추임새가 들려온다. 

그럼 혼자 살면 될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나도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나아질 줄 알고 본가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 간 적이 있다. 
소문으로만 듣던 자유였다. 온갖 소음과 냄새의 고통에서 드디어 해방될 수 있다니!
나의 의지대로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다니! 그러나 늦깎이 자취생이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독립의 설렘과 예민함이 식고 나면 허망과 우울함이
슬그머니 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완벽한 자유는 내게 밀폐된 공포나 다름없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가족들의 라면 냄새는 간간이 나를 삶으로 끌어들이는 회유의 
역할을 했음을. 해 질 무렵 아파트 단지에서 퍼지던 밥 짓는 냄새, 기나긴 복도를
가득 채우던 생선 굽는 냄새, 상가의 어느 상점에서 내놓은 그릇에서 풍기던 자장면 냄새,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며 맡던 이름 모를 꽃 냄새,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나면
손에 배던 철봉 냄새... 이런 예상치 못한 냄새의 파편들이 나를 몰래몰래 길러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이혜인의 <나를 기른 냄새>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