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주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611목 시간은 있다, 이 순간에도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
그대아침
2026.06.11
조회 282
3주만에 집에 돌아왔다. 거실을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내가 없었던 3주의 시간 동안 아무 변화가 없다니. 거실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나. 
어쩐지 조금 맥이 빠졌다. 깔끔하게 정리되었거나 먼지가 쌓였거나, 아니면 
가구 배치라도 바뀌었다면 좋았을까. 내가 보낸 시간의 의미를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애초에 시간이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뒷마당으로 나갔다. 선뜻 다가서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다.
떠날 때 한 송이 피었던 해바라기가 여러 송이가 되었다.
뿌리를 땅속으로 내리고 물을 마시며 살아 숨쉬는 식물에게 뚜렷한 변화가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와 거울을 보니 내 마른 얼굴도 고향 음식으로 볼살이 살짝 올랐다.
역시, 시간은 있다.

냉장고 안이 궁금했다. 야채칸 구석에서 3주 전에 사놓은 브로콜리 봉지를 꺼냈다.
좀 시들었다. 냉장고 옆에 놓인 자루를 들어보니 손가락만 한 초록 싹을 올린 양파가 보였다.
같은 시간을 먹고 시든 것과 자란 것이 나란했다.
시간을 겪은 모두 것들이 다 같은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내 여행의 시간이 양파 싹만큼 의미가 있었다고 혼잣말을 했다.
갑자기 싹을 힘차게 밀어올리는 양파의 변신을 보고 싶어졌다.
투명한 병에 물을 담고 그 위에 양파를 올렸다. 

길 건너 늘어진 푸른 삼나무들이 커다란 창을 시원하게 메웠다.
그 익숙한 풍경은 여러 해 전과 다르지 않다. 삼나무는 해마다 제 몸 안으로
나이테를 그려넣을 텐데도 내가 바라보는 풍경은 그대로라니.
나무와 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같은 숙주 안에서 자라고 소멸하지만, 머무는 기간은 다르다. 
나무가 겪는 수백 년의 시간은 인간이 겪는 시간보다 더 길기 때문일까, 
시간 속을 분주하게 지나온 내 눈엔 나무의 변화가 미미하다.
액자 같은 창틀 속에 시간에 갇혔나 싶은 순간, 멈춘 시간을 뚫고 무언가 움직인다.

어느 틈에 시간이 창을 어둑어둑 채워놓았다. 유리창에 비친 여자의 모습만 점점 선명해진다.
시간은 있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에겐. 여자가 어둠 속을 응시한다. 시간이 움찔한다.
들키지 말아야 해. 언젠가 영원이 오면 나는 그속으로 빨려들어가 촛농처럼 녹아버릴지도 몰라.
시간이 발꿈치를 들고 몰래 달아난다.

*염미숙의 <스무날 후에>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