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03목 수줍고 설레고 싱그러웠던 첫사랑 내 청춘
그대아침
2024.10.03
조회 254
<그 남자네 집> 박완서 장편소설, 박완서는 내 첫사랑 작가다. 
문학에서의 첫사랑이다. 지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나긋하게 들려준다.
조용하고 가난했지만 시선을 한눈에 받았던 남자, 
그 여자를 구슬 같다고 칭찬을 해주던 그 남자, 
그 여자 품에 안겨 울었던 그 남자, 
그 남자의 집을 그리고 그 남자를 위로해본다.
그 남자의 집을 그리며 누군가의 구슬이었던 나의 첫사랑의 시절을 떠올려본다.
 첫사랑 찬란한 시절에도, 치열하고 평범한 시절에도, 
인생을 관조하는 시절에도, 어느 시절에 떠올려도 아련하고 뭉게뭉게하다. 
풋내 나는 설익은 복숭아 같다. 초여름 복숭아를 한입 베어 물 때 
'뚝'하고 앞니가 박혀버리는 그 생경함, 
딴딴하고 떫은 듯 신맛 뒤로 따라오는 맑은 단내, 
그 익숙하지 않음이 기분 좋은, 그래서 한번 맛보면 
그 초여름 복숭아를 기억할 때마다 침이 고인다.

첫사랑 그 시절, 우리는 수줍고 설레고 싱그러웠다. 
그녀의 집은 여러 집들을 지나 골목 어귀에 있었다. 
우리는 그 많은 집들과 동네 구멍가게집의 불이 다 꺼지도록 
골목을 몇 번씩 돌았다. 첫사랑의 설렘은 버스가 다 끊길 때까지 
잡은 손을 놓을 수 없게 했다.
첫사랑 그 골목에는 봄이면 떡 찌는 포근하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여름에는 뜨겁게 달궜다 식혀진 시멘트 냄새와 
얼음 위에 누워 태양과 싸우는 생선의 비릿한 눈물 냄새가 났다. 
가을이면 방앗간에서 깨를 볶는 고소한 냄새가 났고, 
겨울에는 따듯하지만 숨이 턱 하고 걸리던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났다. 
이젠 그 골목도 계절의 냄새도 없다. 골목이 없으니 냄새도 없다. 
그 남자네 집, 그 여자네 집. 그리고 그 가운데 골목. 
그곳에 첫사랑이, 내 청춘이 있었다.

*지유라의 <돌아갈 집이 있다>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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