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09수 하루쯤은 천천히 느리게 여유있게
그대아침
2024.10.09
조회 263

너는 참으로 느리다. 언제나 제자리에 멈춰있는 듯이 느리게 움직인다. 
부지런히 더듬이로 더듬어가며 움직일 때조차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모습처럼 느리고 진중하다. 
아침 조깅을 하거나, 혹은 저녁 천변을 산책하면서 너와 마주칠 때마다, 
나는 너의 느려터진 속도가 일면 우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너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재빠르고 얼마나 바쁘게 살아왔던가! 
혼자 있어야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도, 나는 각종 모임에 나가 
얼굴을 내밀고, 모임 중에도 핸드폰 통화를 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는다.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데도 나는, 
이런저런 사람들과 만나 약간 과장되게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한 가지 사실이 있다면
나도 이제 서서히 늙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뤄둔 것들은 더욱 더 많아지는데, 남은 시간은 점점 더 줄어들고만 있다.
그리고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느리면서도 가장 빠른 것이 세월임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자 자신의 전 생애를 짊어지고 이동하는 달팽이여,
너의 삶의 방식이 이제는 내게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전 생애를 이동시켜야 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가장 진중하게 이동하는 너의 심경을 알 듯도 하다. 
나도 너의 동반자가 되어, 너처럼 느리더라도 내 전 생애를 변화시키는 
한 걸음 한 걸음으로, 내가 진정으로 꿈꾸는 자유를 향하여 이동하고 싶구나.
그러니 달팽이야, 이 편지를 받으면, 내가 너를 따라잡을 수 있도록, 
아주 잠깐만 걸음을 멈추어 주렴.


*소설가, 시인들의 편지를 묶은 책 <해에게서 사람에게> 중에서 
소설가 이만교님이 ‘달팽이에게 띄운 편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 SNS 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