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10목 완벽주의자가 아닌 경험주의자로!
그대아침
2024.10.10
조회 343
내 삶의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은 세계 곳곳을 탐험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다. 몸이나 마음이 망가질 때마다 어디론가 떠났고, 
낯선 곳을 자유롭게 걷다 보면 모든 게 괜찮아졌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세상이 바뀌었다. 조금씩 마음에 금이 갔다. 
어떻게든 이 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무의식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주로 뜬금없고 사소한 것들이었다.
매주 꽃을 샀다. 

“과한 포장 없이 이거 한 송이, 저거 한 단 주세요.”

그날의 힘겨움에 응원이 되는 꽃말을 지닌 꽃을 만원어치씩 샀다. 
어떤 날에는 식물 분갈이를 하거나 잎을 하나하나 닦으며 물을 줬다. 
빨래를 해서 집 안을 세탁 냄새로 가득 채우거나, 
카페에 가서 햇볕 잘 드는 자리에 풀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슬픔을 나누고 혼자 있을 때는 생전 안 하던 별짓을 다했다. 
울면서 홍제천을 달리고, 심장이 터질 것같이 수영을 하고, 
아주 오래된 고전 영화를 봤다. 단것을 잔뜩 사 먹기도 했다.

“그래, 어디까지 힘들 수 있는지 보자. 무너질 대로 무너져 보자. 
금이 가고 부서지는 것들은 이 기회에 다 갖다 버릴 거야.
다 떨어져 나가면
속살이 드러나겠지.”

그동안 힘겹게 쌓아온 경험은 분명 내 안에 남아 있을 거라고 믿는다. 
과거의 내가 견디고 지켜온 시간은 허무하게 무너질 만큼 어설프지 않다. 
내 안에 잘 여문 속살이 하얗게 빛날 테다. 
천천히 바닥을 기어 벽을 짚고 일어난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의 절벽이지만 올라오는 건 더디고 느린 계단이다.
어제 또 굴러떨어졌지만 오늘 한 걸음 올라선다. 그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완벽주의자가 아닌, 경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봉현의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 거야>에서 따온 글.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 SNS 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