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15화 나를 돌보는 데 소홀해지지 않기로
그대아침
2024.10.15
조회 244
얼마 전 퇴근하고 필라테스 수업을 받은 날이었다. 
사무실을 나서기 직전까지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5분이나 늦어 버렸다.
허겁지겁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겨우 거울 앞에 섰는데 짜증이 불쑥 났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충혈된 눈과 구부정한 자세, 구석구석 붙은 군살까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삶에 찌든 몸뚱이가 거울 안에서 허우적 대고 있었다. 
'이게 나라고? 왜?!' 눈물이 터지려는 걸 꾹꾹 눌러가며 운동을 했다. 
그리고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엉엉 울었다. 
갑자기 나 자신이 너무 지겹고 싫어서 견딜 수 없었다. 
아무래도 권태기에 빠진 게 분명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의 권태기 말이다.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는, 망할 것 같은 순간 직전에 정신을 차리는 능력이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삶에 미련이 없는 양 떠들고 다니지만
진짜로 망해 버리는 건 무서워하는 쫄보랄까.
그래서 지난 한 달간은 나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데 최선을 다했다. 
아무 날도 아닌데 예쁜 옷도 사 주고, 안 가 본 동네에 데리고 가서 
맛있는 것도 먹였다. 지난 주말엔 가을 바다를 보러 양양에 갔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서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셨다. 
그러고선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고급 목욕탕에 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하게 씻었다.
목욕을 마치고 머리를 말리는데 이번엔 거울 속 내 모습이 그다지 미워 보이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잠을 충분히 자서 그런가.
아무튼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눈물까지 났던 권태기의 절정은 
지난 듯해서 다행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이 반쯤 풀린 애인을 달래듯 나와 약속했다. 
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나를 돌보는 데 소홀해지지 않기로.

*김해원의 <작은 기쁨 채집 생활>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 SNS 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