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3수 가을을 쓰세요.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그대아침
2024.10.23
조회 279
눈이 녹아 비가 되는 우수처럼,
이슬이 서리로 바뀌는 상강은 계절이 크게 바뀌는 시기다.
기온이 어는점 이하로 내려가서 생기는 서리는 겨울 채비를 서두르라는 가을의 마지막 신호.
10분 단위로 맞춰놓은 기상 알람으로 치자면
이제 더는 미적댈 수 없는 마지막 알람이 울린 셈이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듯 겨울나기 준비를 서둘러야 할 때다.
이 무렵 내가 좋아하는 산책은 위를 올려다보며 하는 산책보다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산책이다. 뭐랄까, 상강 무렵은 1년 중 아래를 보고
걷는 게 가장 즐거운 때라 해야 할까.
올려다보는 단풍의 계절에서 내려다보는 낙엽의 계절까지, 내가 생각하는 숙제는 하나다.
이 가을을 끝까지 써야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치약이나 핸드크림의 가운데를 가위로 잘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답게, 이 계절을 끝까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까워라, 하는 마음으로.
가을을 타는 친구는 단풍이 아름다운 건 잠시뿐,
그 잎이 결국 모두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면 쓸쓸함이 더 커진다고 했다.
가을의 이미지는 대체로 그런 편이다.
절정에 이르렀던 것들이 쇠락해가는 것을 지켜보는 허망함.
하지만 단풍이 우리 보라고 저리 화려하게 물든 것이 아니듯,
낙엽 또한 쇠락의 이치를 일깨워주려고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자연의 시간표에 따라 겨울나기 채비를 하고 있던 나무 입장에서는
좀 어리둥절한 일이 아닐까?
왜들 그런 표정이야? 나 때문에 쓸쓸하다니? 바쁘니까 그런 얘긴 나중에 해.
사람의 입장에서 인생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입장에서 목생을 생각한다면 나무는 가을의 끝자락에도 여전히 바쁘다.
*김신지의 <제철 행복>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