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새기는 말이 있다. 한 권의 책을 백 명이 읽었다면
모두 백 개의 텍스트가 된다는 말. 다들, 따로따로 읽는다. 따로따로 느낀다.
개별적으로 살고, 개별적으로 사랑한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끝!'
이렇게 막을 내리는 동화 속 이야기는 현실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어른은 없다.
무대가 분홍색 커튼으로 덮이고 난 뒤에 본격적인 생활이 시작된다.
백설 공주도, 개구리 왕자도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
장을 봐야 하고 밥을 지어 먹은 다음 설거지를 해야 한다.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고 건조대에 널어 말린 다음 잘 개어 서랍에 차곡차곡 집어넣어야 한다.
마룻바닥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고 물걸레질을 한 다음엔
더러워진 걸레를 꾹꾹 비벼 빨아야 한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생활 속으로 돌입한다는 뜻이다.
의식주를 해결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공동의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그 세월의 더께 속에서, 실은 두 사람이 최초에 무척 특별한 감정으로 맺어졌던
관계임을 상기할 여력은 사라진다.
욕실의 타일 줄눈이 더러워지는 것처럼, 어떤 일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주 서서히 일어난다.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차가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뜨거운 커피를 좋아하는지 낱낱이 기억할 여력은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요즘 꽤 자주, 그 사소한, 커피의 온도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마다 혀끝의 온도가 다 다르다는 것에 대해 한 사람을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고
위안을 주는 온도가 제각각이라면, 이 넓고 넓은 세상에서 나 말고
단 한 사람쯤은 나만의 그 온도를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정이현의 <우리가 녹는 온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