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218수 '그러려니' 살아야 할 때와 그렇지 않아야 할 때
그대아침
2024.12.18
조회 318

'그러려니' 그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뭔가 못마땅하다는 자조가 서려 있다.
곧 다가오는 노년의 처세로 적당하다고 맞장구를 쳤지만 
부르르 끓는 그의 성격으로 봐서 좌우명을 제대로 지킬지 의심스럽다. 
그는 어제 저녁에도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큰소리를 냈다. 
아침이 되자 멋쩍은지 내게 “그러려니 해”라고 한다. 
남편이 매일 술 마시며 늦게 들어와도, 아이들이 바빠서 안부 전화조차 
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오래 전 사건을 지금 일로 착각하며 성화를 하셔도, 
90세 아버님이 담배를 여전히 피우시는 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문을 보면서 '그러려니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부산에서 70대 할머니가 백만 원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인 할머니가 매월 자신이 받는 주거급여, 노령연금 55만원 가운데서
모은 것이라고 한다. 그 돈을 모으기 위해 참았을 갈증과 식욕과 남루가 그려진다.
기부 같은 건 부자들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려니 하려니 마음이 찔린다. 
칼에 베이지 않고 망치로 내리쳐도 다치지 않는 캐나다산 특수 장갑이 나왔단다.
8만 원이라는 이 장갑을 소방관에게 지급하라는 여론이 SNS 상에 들끓고 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일에 맞는 처우가 시급하다. 그러려니 하려니 속이 탄다.

사는 일이 긴 줄넘기 놀이 같다. 빠른 판단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둥근 원안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 호흡을 야물게 맞춰야 한다. 
큰 흐름에서 한번 이탈하면 다음 수순을 따라잡기 힘들다. 
순방향에 서든, 역방향을 택하든 삶은 예전보다 길어졌다. 
끝까지 잘 살아내려면 최후의 무기인 몸을 다스리고,
최고의 무기인 정신의 날을 갈아야 한다. 너무 날카로워 위험하지 않게, 
너무 무디어 어리석지도 않게. 신문을 보고도 흥분하지 않을 시간이 올까. 
그러려니 하면서 씁쓸하게 고개만 주억거릴 날을 생각하면 뼛속에서 바람이 인다.
그의 '그러려니'가 안으로 팽팽하고 밖으로 느슨할 수 있기를.


*노정숙의 <피어라, 오늘>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