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좀 감아 봐, 엄마한테 선물할 게 있어."
감은 눈을 떠 보니 일곱 살의 환이는 두 손에 노란 은행잎 한 묶음을 들고 서 있다.
한 묶음이라야 서너 잎에 불과했지만 잃어버릴까 봐 어린 마음에 걱정이 되었던지
가느다란 고무줄로 칭칭 감기까지 했다.
잘 다듬어져 있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투박한 모습이지만
그 서너 잎의 은행잎 한 묶음을 바라보려니 가슴 언저리가 뜨끈해진다.
피아노 레슨을 마치고 비를 피해 집으로 달음박질해오는데
길가에 흩어진 노란 은행잎이 비를 맞고 있는 것이 추워 보여 가엾더란다.
따스하게 비를 가려 주려고 한 잎 두 잎 주머니에 넣다 보니
문득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생각이 들더란다.
하늘에서 내리는 저 빗방울도 이제는 순수한 빗물이 아니라고 한다.
강과 호수, 심지어는 아름다운 예술 조각품,
석상까지를 암세포처럼 꺼멓게 파먹어 가는 산성비. 죽음을 부르는 비라고 한다.
나는 환이에게 우산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사는 게 다 뭔지... 동동거리고 바쁘게 살다 보니
참된 소중함을 저만큼 잊고 살 때가 많다.
이게 아닌데 싶어 마음속으로 썰렁하니 휙휙 마른 바람이 스쳐갈 때도 많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일깨워 주고 감동을 주는 것은
이렇게 작은 것 속에 깃든 참됨이 아닐까.
좀 꺼끌꺼끌하니 투박해 보여도 눈빛을 반짝이며 어린아이가 건네준 은행잎 한 묶음 같은,
하나하나의 오롯한 정성이 깃든 작은 마음씨들이 아닐까.
*박인희의 <우리 둘이는>에서 소개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