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나들이를 안 다닌다. 이따금 장이나 보러 갈 뿐
좀체 바깥 구경 다닐 줄 모른다. 마을회관에도 안 나간다.
멀미가 심한 체질이라 택시 타고 바람쐬러 나가기도 쉽지 않다.
"할머니는 왜 놀러 안 다녀요?" 여쭈면 "나는 원래 안다녀."라는
도돌이표 대답만 듣길 몇 번.
어머니에게 슬쩍 물어보니 아마 나이 차 많이 나는 남편을 만난 탓 같단다.
제 나이보다는 남편 나이에 맞추어 '점잖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하나 집 밖을 나서고 사람 만나는 것 하나하나 조심하던 게
어느덧 몸에 익어버린 것 아니겠냐고.
그러고 보면 할머니는 옷도 온통 '점잖은' 색 일색이다.
조금만 화사한 걸 권하면
"다 늙어 빠진 게 알록달록한 거 입으면 뭐 하노!" 하면서 물린다.
평생 바깥에서 사람들과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재미를 못 누리고 살아온
당신의 노년의 낙은 식물 키우기다.
소일거리로 마당에 조그맣게 밭을 일구는데
콩, 팥, 파, 감자, 무, 배추, 고추, 상추, 깨, 호박…
온갖 걸 심어다 쏠쏠하게 수확해서 다섯 자식들에게 똑같이 나눠 보낸다.
밭 주변으로는 둘레에 돌멩이까지 가지런히 둘러서
정원을 아주 살뜰히 가꾸어 놓았다.
계절마다 장미가 수국이 백합이, 백일홍이, 달리아가, 영산홍이, 국화가 핀다.
"니 우리 정원에 꽃이 얼마나 이쁘게 팠는지 아나 와서 보고가라."
자랑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낭랑하다.
광합성하듯 홀로 있어도 늘 충만한 당신.
나는 당신의 그 단단한 기운을 그리며 이 시국 속 하루하루를 버틴다.
얼른 울진으로, 외갓집으로 달려가야지.
마당 구경, 정원 구경 시켜달라 졸라야지.
*노나리의 <내게도 돌아갈 곳이 생겼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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