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127수 작지만 소중한 그대라는 존재
그대아침
2024.11.27
조회 309
잠든 지 겨우 두 시간. 바람 때문에 깼다. 무섭고 날카로운 겨울바람이다. 
침실 유리창에 붙여놓은 방풍 비닐이 온 힘을 다해 펄럭인다.
심하게 부는 새벽바람이 누군가를 부르는 건지, 자신을 보라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더러는 내 마음 같기도 하다.
용기가 없어서 대낮에는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펄럭이는 아우성 같아서다.
하기야 내 마음이 한철 차가운 바람의 가림막으로 살다가 사라질 비닐 같기도 하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작은 열기에도 견디지 못하고 쪼그라드는
나쁜 성격만 닮은 건 아닐까 하는 염려도 든다. 

나에겐 새벽이 자주 거대한 벽이고, 책상 위의 손바닥만한 종이도 자주 거대한 벽이다.
종종 벽 앞에서 부리는 오기나 모험에 가까운 발악은 한 번도 벽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자주 허물어진다.
종이 한 장을 채우지 못해서가 아니라 종이로 칼을 만들 순 없을까,
종이로 집을 지을 순 없을까 하는, 종이를 벗어난 마음 때문이다.
고작 길 위의 이야기들을 주워 모아다가 모닥불 같은 글을 쓰는 일이 전부인 것을.
그 모닥불마저 제대로 지피지 못한 날에는 작은 소리에도 마음이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 

한때 사소한 나의 이야기들이 세상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을까 하며
새벽을 설쳤던 적이 많다. 기껏 라면 한 봉지나 푸성귀 한 잎 보다
소용없을 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에 눈뜨지 못하던 아침도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얇고 허약한 비닐 한 장 같은 삶이라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 안다.
부실한 비닐 한 장 덕분에 누군가는 떨지 않고 새벽을 보내고 있으니까.
이 정도의 쓸모라면 좋겠다.
서슬 퍼런 새벽, 잠들지 못하고 펄럭이던 마음이 있다.


*변종모의 <당분간 나는 나와 함께 걷기로 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