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826월 보라빛 그리움이란 꽃말의 순비기나무
그대아침
2024.08.26
조회 310
불쑥 비닐봉투를 내민다. 
쑥스러운 표정을 한 그녀 얼굴에 골 패인 주름살이 오늘따라 더 깊어 보인다. 
슬그머니 열어본 봉투 속에는 순비기 열매와 이파리가 가득 들어 있다.
"이거 관절 통증에 최고라." 한마디 툭 던지고 돌아선다.
그녀는 젊은 시절부터 해녀로 살며 물질을 해왔다. 
오랜 물질은 그녀에게 '잠수병'이라 불리는 해녀병을 안겨주었다. 
관절 통증과 두통과 난청, 호흡곤란 등 잠수병에 시달리는 일로도 부족해, 
발목 부상으로 장애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현대의학보다 순비기나무 열매가 최고의 치료제라 믿는 듯싶었다. 
오래도록 바당을 끼고 살아온 제주 여인들은 힘들어도 반복되는 물질을 거부하지 않았다. 

‘순비기나무’란 독특한 이름은 '숨비소리'에서 붙여졌다. 
숨비소리는 물질하던 해녀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허파에 압축됐던 공기를 
입 밖으로 뱉어낼 때 나오는 깊은 숨소리 아니던가. 
제주 바당을 따라 걷다보면, 순비기나무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메마른 모래밭에서 소금기 섞인 바람과 거친 태풍을 맞으며 
꿋꿋하게 뿌리내리고 번식하는 모습이 해녀들의 강인한 생활력을 닮았다. 
그래서일까. '그리움'이란 꽃말을 지닌 순비기나무는 '숨베기', '숨비기닝'이라 불리며 
해녀들에게 고마운 식물로 알려져왔다. 
특별한 약재를 구하기 어려운 열악한 환경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민간요법이야말로 요긴한 비상약품이 아니었을까.
바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하며 생의 무게를 함께 짊어진 듯, 
순비기에 대한 매력이, 지고 지순한 그녀와 견줄 만했다.


*이명진의 <물숨의 약속>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