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낮에 기쁜 순간과 지점을 찾으려 애썼다.
집안과 바깥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그리고 나 자신에게까지.
요즘 들어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가 모호할 때가 많아서이다. 주로 기쁨이 그렇다.
슬픔과 아픔은 매번 자신의 존재를 명확하게 드러내어 행세하는데
기쁨은 좀처럼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평소에 느끼는 몇몇 기쁨은 각기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형식을 지닌다.
오후 두시쯤 커피를 마실 때, 산채나 물을 곁들인 보리밥을 먹을 때,
모처럼 한가한 시간에 친구와 오래 수다를 떨 때, 누군가에게서 손편지를 받을 때,
이럴 땐 매번 기쁘다.
이미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있어 그 기쁨이 확장되거나 새롭거나 오래가지 않는다.
특별한 것들이 기쁠 때도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특별하게 여기는 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호박잎이 알맞게 쪄졌을 때, 맑은 물김치를 담글 어린 열무를 만났을 때,
착용감이 좋으면서 부드러운 양말을 신었을 때, 값싼 펜이지만 똥이 나오지 않을 때,
김장김치가 맛있어 누군가에게 주고 싶을 때,
읽고 있는 책에 나를 각성시키는 문장이 많을 때,
기차를 타고 낯선 곳을 지나는데 문득 익숙한 풍경이 겹쳐보일 때,
여행지에서 들른 백반집의 밑반찬이 정갈하고 맛있을 때,
자주 가는 카페에 내가 즐겨 앉는 자리가 비어 있을 때,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매번 다른 기쁨을 느낀다.
하루하루가 복사하여 붙여놓은 것처럼 권태로울 때가 있다.
사랑처럼 기쁨도 재발명해야 한다.
도처에 희미하게 존재하는 그것들을 낚아채어 선명한 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오늘 낮동안 그것들을 놓쳤지 싶다.
내일은 서점에 다녀오는 길에 멍게를 사와야겠다. 멍게 향에선 기쁨이 난다.
*임이송의 <나는 왼손을 믿지 않는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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