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828수 짝이란, 부재로서 존재를 일깨우는 존재
그대아침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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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인대가 늘어나 깁스를 했다. 
별쭝나게 하는 일도 없어 보였는데 치약 짜는 일에서 바지올리는 일까지, 
한 손만으론 역부족이었다. 커피 봉지를 따는데는 앞니가 앞장을 섰고 
열린 문을 붙잡아야 할 때엔 오른발이 보조를 해주었지만 
상부상조할 일이 혼자 몫이 되다 보니 성한 팔까지 땅기고 아팠다. 
어깨며 등줄기도 욱신거렸다. 가장 난감한 건 욕실에서였다.
깁스한 손에 물이 스미지 않도록
왼팔을 위로 추켜올리고
한 손으로 샤워기를 잠갔다 열었다 하거나
들었다 내렸다 해야 했다.
씻는다기보다 겨우 물이나 끼얹을 뿐이어서
등을 닦는 일도
샴푸 거품을 내는 일도 여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문제는 오른팔이었다.
오른팔을 씻어 줄 수 있는 것은 왼팔뿐이었으나 

왼팔이 성치 않으니 성한 팔도 씻을 수 없는 것이다. 

휠체어 생활을 하던 중증장애 남편을 수십 년간 보살피다
얼마 전에 하늘로 떠나보낸 지인과 저녁 한 끼를 나누고 왔다.
혼자만 힘들게 해 미안하다고,
이승에서 나는 천사를 만났다고,
버릇처럼 말해 주던 사람을 떠나보낸 부인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초췌하고 파리해 보였다.
숙명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했다 싶은데도 보내고 나니 회한이 많이 남는다 하였다. 
지친 오른팔을 주물러 주고 거친 손등을 쓰다듬으며
로션을 바르고
위로를 건네는 일은
아픈 왼손만의 몫일 거라며 베옷 두른 내 왼팔을 

가만가만 어루만지는 부인의 눈시울이 그렁그렁해졌다. 
부재로서 존재를 일깨우는 존재, 짝이란 본디 그런 걸지도 모른다.

*최민자의 <꿈꾸는 보라>에서 소개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