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903화 행운이 탱탱볼처럼 튀어오르는 하루
그대아침
2024.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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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하는 고백이지만,
사실 열 살이 되기 전에 나는 문방구 주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대통령과 과학자, 선생님이나 간호사가 꿈의 순위에 오르내리던 시절에
나는 그런 꿈을 가졌다는 게 부끄러워서 말은 못했지만, 

속으로는 문방구 주인이 정말 되고 싶었다. 
온갖 종류의 학용품과 장난감들, 달콤한 막대사탕과 행운을 점쳐주는 
뽑기 기계들은 언제나 강렬한 유혹이었다. 용돈이라는 것도 몰랐고 
돈은 없었으므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바깥에서 먼빛으로만 보는 아쉬움이
나의 꿈을 더 부추겼을지도 모르겠다. 

동전을 넣고 달칵하는 소리가 나도록 돌리면 또르르 굴러내려오는 
동그란 공을 두 손 가득 안고 싶었던 것이다. 
열어봐야 손가락에 맞지 않는 플라스틱 반지거나 종이딱지 몇 장이 대부분이지만,
내 손으로 어떤 행운을 뽑고 기다리는 마음이 나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아이들을 낳고 키우면서 다시 문방구의 뽑기 기계들 앞에 앉게 되었다. 
동전 몇 개씩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고는 
조그만 입구에 얼굴을 가져다댄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떤 기대를 갖는 작은 즐거움을 느낄 테고, 
또 바라던 선물이 아니라 기대가 무너지는 작은 실망도 배울 테지. 
이제는 아이들도 문방구와 뽑기 기계들을 잊을 만큼 커버린 시절, 
문방구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시선이 멈췄다. 
그러고는 문득 삶의 사건들도 뽑을 수 있다면 
그저 저 뽑기 기계만큼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눠줘도 아쉽지 않을 정도의 행운이므로 욕심내지 않을 테고, 
또 적어도 저 기계에서는 가슴을 도려내는 것들은 나오지 않으니까. 
그뿐인가. 공을 열고 실망했다고 삶이 무너지지도 않으니 
얼마나 마음이 놓이나.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이 나오면 
그날 하루의 운수대로 맘껏 튀어 올라도 괜찮잖아.


*이운진의 <당신은 어떻게 사랑을 떠날 것인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