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1024목 삼시 세끼 밥짓고 차리는 일도 예술이지
그대아침
2024.10.24
조회 273
아내가 밥상을 차리기 위해 반찬을 그릇에 담아 놓으면 
나는 그 반찬들을 가져다가 상에 차려 놓는다. 
어쩔 때는 밥을 푸는데 밥솥을 열 때 
김이 확 솟아오르는 밥통 속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한다. 
김이 솟아나면 밥 밖으로 나와 있던 물기가 스며드는 피시시하는 소리도 듣기 좋고
하얀 밥 티들이 이리저리 누워 있는 모습은 실로 눈부시다. 
물을 좋아해서 물에서 자란 쌀이 불과 물을 만나 밥이 되는 그 신비함이라니. 

아무튼 주걱으로 밥을 뒤적여 흰 쌀밥을 밥그릇에 퍼 담을 때 
밥그릇에 담긴 밥을 보면 그 또한 아름답고 신비롭다. 
하얀 쌀밥 속에 푸른 완두콩이라도 드문드문 섞여 있으면 
"우와! 예술이다, 예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밥뿐이 아니다. 
하얀 접시에 가지런히 썰어 살며시 얹어 놓은 김치는 또 어떤가. 
콩나물국, 상추 속에 가만히 놓여있는 풋고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된장국, 
가닥 채 넣고 끓인 김치찌개, 나란히 놓인 젓가락과 수저, 
밥상 위에 차려진 모든 반찬과 밥을 한눈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렇게 사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된 그림이나 사진이 없을 것 같고, 
마음을 풍요롭고도 아름답게 해주는 이만한 산문과 시 한 편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밥하는 일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예술이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아내는 알고 있다. 아니, 밥 짓는 일을 스스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밥하는 일과 시 쓰는 일이 뭐가 다른가. 
밥하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과 무슨 차이가 나는가. 
예술은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생명력이다. 밥 한 알 놓여있는 모양에서 
전 우주의 이치와 질서, 그리고 그 엄연한 존재들의 팽팽한 기운과 긴장, 
존재들의 아름다운 조화를 읽는다. 하루 삼시 세끼 밥상은 장엄하다.
밥은 사료가 아니다.


*김용택의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시>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