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02화 비가 딱 도움 될 만큼만, 누리기 좋을 만큼만 내리기를
그대아침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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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공감


우리가 나란히 선 곳은 창덕궁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 '희우루' 현판 아래였다.
비를 피해 몸을 숨기기 딱 좋은 이곳에서 비 내리는 궁궐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고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는 설명을 들으며 아름다운 숙제구나, 생각했다.
궁궐을 좋아해 근처에서 약속이 있으면 괜히 들러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있다 나오기도,
눈 내린 날 먼길을 달려온 적도 있었지만, 비가 온다고 부러 찾은 적은 없었다.
비를 보면 떠오르는 나만의 장소가 있다는 것,
그것이 하물며 고궁 안에 있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이제 나는 비 내리는 날이면 ‘희우루’를 떠올린다.
기쁠 희(喜)에 비 우(雨),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누각.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던 해, 누각 중건 공사를 마친 날 반가운 비가 내리자
정조는 이 누각의 이름을 희우루라 짓고 그때의 마음을 글로 남겼다.


"마음이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
마음에만 새겨둔다면 자기 혼자만 그 기쁨을 즐기게 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큰 기쁨을 마음에 새겨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사물에다 새겨두고,
사물에다 새겨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마침내 정자에다 이름 지었으니
기쁨을 새겨두는 뜻이 큰 것이다."


어진 임금의 뜻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 오는 날의 명당을 알려주는 마음도, 장마철 제철 숙제를 고심해 건네는 마음도
여기에 있다 말해도 되려나. 마음에만 새겨두면 혼자서만 그 기쁨을 즐기게 되니,
함께 기뻐하고자 이렇게 글로 새겨둔다.
바라건대 이번 장마는 부디 무사히 지나가기를, 큰 피해가 없기를.
그리하여 비의 계절을 지나는 저마다에게,
우중 산책을 나서서 숨어들고 싶은 장소가 하나씩 생기기를.

비 오는 날에만 잠시 열렸다 닫히는 풍경이 있다.
그 풍경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빗소리는 반가운 노크일 것이다.
창밖으로 희우, 기쁜 비가 온다.




* 작가 김신지 ’김신지의 제철 숙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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