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705금 아이들이 천국의 입구였구나
그대아침
2024.07.05
조회 348
아침공감


첫째 아이를 키울 때는 이 아이가 언제 자라서 어른이 되나
까마득하기만 했다. 그래서 한 달이 멀다 하고 문설주 옆에
아이의 키를 표시하며 "와, 이만큼 컸네" 기뻐하곤 했다.
그런데 둘째 아이를 키울 때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주문처럼
"자라지 말아라. 자라지 말아라" 중얼거렸다.
아이들이 부모 품에 머무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미시 공동체에 전해 내려오는 어머니의 묵상에 이런 대목이 있다.
"청소나 설거지는 내일까지 미룰 수 있지만,
슬프게도 아이들은 훌쩍 자라버린다.
그러니까 거미줄, 먼지 같은 것들은 잊어버리고 지금은 아기를 재우며
행복한 시간을 갖도록 하자.
그런 즐거운 시간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므로."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 돌이켜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품속에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숨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래투성이가 되어 집에 들어온 아이의 맨발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저 업어서 재우기에 바빴고, 씻기고 먹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제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오히려 내 아이가 더이상 아이라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다.
여행을 가도 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그냥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화려한 왕궁이나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보다
도시의 뒷 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게 더 좋다.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에 갔을 때,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86캐럿의 다이아몬드보다 궁전으로 소풍 온
아이들의 파란 눈동자가 훨씬 눈부시게 느껴졌다.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갔을 때도 고성이 있는 오래된 마을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을 만났다. 아이들은 모처럼 나타난 관광객을
무리 지어 따라다니며 서로 자기를 찍어달라고 포즈를 취했다.
지푸라기나 돌멩이 하나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
무지개를 좇아 달려가는 아이들.
지붕이 무너지고 담벼락에 금이 간 집들이 많았지만,
그 쇠락한 골목길이 지금도 환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 덕분일 것이다.
그 웃음소리야말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세계 공용어 아닌가,
아이들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중얼거린다.
아, 아이들이 천국의 입구였구나.




*시인 나희덕 <한 걸음씩 걸어 거기 도착하려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있으니 개인 SNS등에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