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604화 라면 끓이다가 울어본대도 괜찮아
그대아침
2024.06.04
조회 320
아침공감


밥하다가 울어본 적 있다. 너무 하기 싫어서.
은 설거지하다가도 울어봤다
. 댓바람부터 솔짝솔짝 잘도 우는 나는
일곱 살 쌍둥이 형제를 키우며 엄마다
.
해 질 무렵이면 종종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며 초조해한다.
'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이지'하고서.
겨우 일곱 살 살아봤대도 우리 집 아이들에겐 소울푸드가 있다.
엄마 부끄러우니까 어디 가선 말하면 안 된다 꼭꼭 당부했지만
아마도 다섯 살 때부터 넘버원 페이보릿 소울푸드였을, ‘라면이다.
장렬하게 워킹맘 분투기를 치르고 몸도 마음도 탈탈 털려버린 날이면
나는 특식으로 라면을 끓인다.
애들한테 "오늘 저녁은 라면이야!" 결심하듯 선포하면
예이 환호 소리가 들린다
. 비장하게 앞치마를 두른다.
4구짜리 가스레인지 불을 모두 켠다. 냄비 두 개에 프라이팬과 웍까지 올려 라면을 나눠 끓인다.
하나는 우유우유치즈라면, 다른 하나는 대파대파후추라면.
우유 많이 치즈 쪼끔 넣은 라면이랑 대파 많이 후추 쪼끔 넣은 라면이라서.
물론 애들 재밌으라고 그럴싸하게 내가 지었다.
모름지기 특식 요리란 이름부터 길고 멋진 법이니까.
아이들과 나, 폴폴 김이 오르는 라면 세 그릇 식탁에 올리고 마주 앉는다.
후후 불어 후루루루.
마침 라디오에선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흘러나온다. 마마. 우우우우.
마마'는 어려서부터 애들이 날 부르던 애칭이기에 다 같이 웃음이 터진다.
엄마 라면이 젤루 맛있다는 일곱 살들은 그릇에 코를 박고서 후루루 라면을
먹는다
. 나도 뜨끈하고 매콤한 국물부터 호로로 마셔본다." .
"
살 것 같다.” 감탄사처럼 속엣말이 흘러나온다.
"
엄만 라면 먹을 때마다 살것 같다고 하더라."
웃음이 터진다. 어느새 숨 막히던 삶은 살 것 같은 삶이 된다.

나처럼 밥하다가 울어본 엄마라면,
애들한테 라면 먹인다고 죄책감 느끼진 말았으면 좋겠다.
라면은 간편해. 라면은 맛있지. 라면은 따뜻해.
그리고 우리는 라면을 좋아하지.
매일 먹는 라면은 나빠도 가끔 먹는 라면은 좋다.
혼자 아닌 함께라면, 우리 함께 먹는 라면이라면 더더 좋다.
훗날 얘네가 어른이 되어서 고된 세상 살이에 울게 된다면
엄마의 라면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가만히 바닥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
냄비에 물 올리고 라면을 끓일 스물일곱살 아이들을 상상한다
.
너네가 울고플 땐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얼렁뚱땅 이상한 라면을 끓여준
엄마를 생각해
, 엄마가 울고플 땐 너네가 시끌벅적하고 집이 복닥거려서
다행이었거든
. 라면 끓이다가 울어본대도 괜찮아.
엄마야말로 아주 울보였거든. 일단 맛있게 먹어.
뜨거운 라면 한 그릇 깨끗이 비우고 나면 다시 살 것 같아질 테니까.



* <요즘 사는 맛2>에 실린, 작가 고수리의 글
'밥하다가 울어본 엄마라면' 이었어요.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 하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