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605수 이 6월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보세요
그대아침
2024.06.05
조회 352
아침공감


산딸기 익어가는 달, 옥수수밭에 흙 돋우는 달,
바닷가로 여행 갈 준비하는 달, 딸기가 익어가는 달 , 더위가 시작되는 달,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양산이 필요한 달, 매실이 익어가는 달,
에어컨 청소하는 달, 초목들이 크게 자라는 달, 육이오의 달, 괭이질하는 달,
초록이 풍성해지는 달, 하루가 엄청 긴 달, 황소가 짝짓기하는 달,
찔레꽃 피는 달, 거북이의 달, 장미향 가득한 달, 옥수수수염이 나는 달,
모내기하는 달, 감자 캐는 달, 장마를 대비하는 달, 장미향 시드는 달,
보리가 익어가는 달...

시간이 벌써 이리 지났어요.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여섯 번째 달에는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까요.
'밤꽃 향이 진한 달' 이라는 이름을 주신 분은
"밤꽃이 지고 나면 파란 별사탕이 열리는데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그게 자라서 털북숭이 밤이 되더라고.
군인들 건빵 속 별사탕 같아" 라고 실감나게 말씀해주셨어요.
'장마를 대비하는 달' 이라는 이름을 교실 한쪽에서 누가 말씀하시니
앞에 앉아 계시던 분이 뒤돌아보면서 "요즘은 장마가 없어"라고 하셨고요.
그러자 또 다른 쪽에서 "장마가 없어도 알고 대비는 해야지"라고
이름 주신 분 말에 추임새를 넣으셨고요. 이름을 새로 짓는 데 살아나는
이 모든 감각과 마음과 생각... 지금 여기의 시간을 사는 우리가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잊어버린 것들 입니다. 그걸 되살리며 이름 짓는 시간이 행복했습니다.
작은 교실이 바로 이 땅과 세계를 적극적으로 호흡하는 생기로운
삶의 터가 되었으니까요.
우리가 아메리카 인디언에게서 배우는 삶의 방식은 이런 감각이 아닐까싶어요.
자신이 깃들어 사는 터, 공간, 장소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
토착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리고 관계 안에서 사유하는 것 말이지요.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6월에 붙인 이 이름, '점점 두꺼워지는 달'
무슨 뜻일까요? 아마 무성해지는 숲과 들판을 보면서 인디언들은
이 대지가 두꺼워진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무엇이 두꺼워진다는 구체적인 지시 없이 만들어진 이름은 이 세상,
이 대지를 전체로 바라보면서 조망하는 인디언들의 독특한 시선을 잘 보여준다 싶어요.
많은 이름들 중에 지금 저는 '말없이 거미를 바라보게 되는 달' 이란 이름을 오래 바라봅니다.
거미는 소리 없이 움직입니다.
조용히 움직이는 거미를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란?
침묵에 침묵을 더하는 그 시간을 뭐라고 이름 붙일까요?




*영문학자 정은귀의 책 <딸기 따러 가자>에 나온 글,
줄인 내용이 있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하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