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중학교 때 나는 학교를 다니는 것이 싫었다.
매일 4~5리가 넘는 길을 아침저녁으로 걸어다녀야 했다.
몸도 지치고, 학교에 가도 공부하는 재미가 없었다.
마음이 그러니 하루씩 결석을 하게 되었다.
처음엔 산에 가서 놀다가 점점 더 늘어 아예 집에서부터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날도 나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어린 아들이 그러니 어머니로서도 한숨이 나왔을
것이다.
"그래도 얼른 교복으로 갈아입어라. 어미가 신작로까지
데려다줄 테니까."
마지못해 교복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어머니가 지게 작대기를 잡고 계셨다. "그건 뭘 하게?"
"글쎄, 너 학교 가는 데 필요할 것 같아서 그러지.
가방 이리 주너라.“
하루 일곱 시간씩 공부하던 시절이었고,
무게가 만만찮은 가방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한 손엔
내 가방을 들고 또 한 손엔 지게 작대기를 들고
나보다 앞서 마당을 나섰다. 나는 말없이 뒤를 따랐다.
그러다 신작로로 가는 산길에 이르러 어머니가 내게
가방을 내주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네가 이 가방을 들고."
나는 어머니가 중간에 학교로 가지 않고 다른 길로 샐까봐
신작로까지 데려다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생각으로 함께 신작로로 가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뒤따라오너라."
어머니는 두 발과 지게 작대기를 이용해 내가 가야 할 산길의 이슬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몸뻬 자락이 이내 아침이슬에 흥건히 젖었다.
어머니는 발로, 작대기로 이슬을 털었다.
그렇다고 뒤따라가는 내 교복 바지가 안 젖는 것도 아니었다. 신작로까지 15분이면 넘을 산길을 30분도 더 걸려 넘었다. 어머니의 옷도 그 뒤를 따라간 내 옷도 흠뻑 젖었다.
"앞으로는 매일 털어주마. 그러니 이 길로 학교를 가.
다른 데로 가지 말고."
어머니는 가끔 그렇게 내 등굣길의 이슬을 털어주셨다.
또 새벽처럼 일어나 먼저 이슬을 털어놓고 오실 때도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내가 저지른 잘못이 어디 한 두가지일까마는, 또 후회스러운 일 역시 어디 그것뿐일까마는
어린 날 학교를 가지 않아 어머니가 자식의
장래에 대해 기도하듯 산길의 이슬을 털게 한 것만큼
마음 아픈 일이 없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털어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아마 그렇게 털어내주신 이슬만 모아도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책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중,
소설가 이순원의 글 ‘등굣길 어머니의 이슬털이’
였습니다.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