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나는 거울 속 내 얼굴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다.
나만 세월을 다 먹는 것 같다. 나는 잘 웃는 여자의 오래된 눈주름을
참 좋아하는데, 나는 참말 잘도 웃는데, 왜 내 눈주름은 예쁘게 잡히지 않는지
모를 일이고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노년의 헤어스타일은
염색기 하나 없이 희디희지만 탱글탱글 탄력 있게 올라 붙은 짧은 파마머리인데,
벌써부터 머리칼이 시들시들하게 늘어지니
귀엽고 깜찍한 백발을 하기는 영 글렀다. 게다가 내 목소리는 어쩜 아직도
이리 까칠한지. 얼마 전 소설가 선배를 만났다.
그녀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아유, 왔구나, 내 새끼들!” 나는 그만 코가 찡해지고 말았는데
오랜 시간 너그럽고 다정한 심사로 사람들을 대해온 한 여자의 인사법이
온몸으로 드러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흔이 넘었어도 여태 귀엽다.
“얘, 그러니까 이번엔 꼭 춘천엘 가자고. 기차 타고 가서 산도 보고 물도 보고.
우리 꼭 가자, 응? 그이가 키우는 오리도 보여준대!”
그래서 나는 다음주에 그녀를 따라 춘천엘 간다.
오리도 보고, 커다랗고 흰 오리알도 보러.
거문도에 갔다가는 또 내가 좋아하는 그녀를 만났다.
그녀의 이야기는 다 귓속말 같다. 조근조근, 나지막한 목소리에다
은은하게 웃음을 얹기 때문이다. 내가 기침을 콜록콜록 하자 그녀는
주머니에서 말린 대추 한줌을 꺼내주었다. 한참 후에 그녀는 다시 내 곁으로 와 비닐에 담긴 대추를 몽땅 건네주었다.
“아까 다 줄 걸. 이게 뭐라고 내가 너한테 그만큼만 줬을까.”
거문도 일정은 짧아서 바로 다음날 우리는 배를 타고 돌아가야 했지만
그녀는 일행들 뒤로 스윽 빠진 뒤 가만히 내 팔짱을 끼었다.
“가지 말자. 하늘이 너무 예뻐서 나는 못 가겠어.”
도무지 배에 올라타고 싶지 않았던 나는 헤벌쭉 웃으며 하루 더 머물렀다.
긴 밤 동안 우리는 소주를 마시고 참외를 깎아먹었다.
다음날에도 그녀는 부두에서 말했다.
“물결이 너무 예뻐서 나는 못 가겠어. 도저히 못 가겠어.”
정말이지 햇살을 가득 받은 거문도 바다 물결에 눈이 부셨지만
배표를 바꿀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거문도를 떠나야만 했다.
내가 나이 들어 가장 닮고 싶은 두 분이다.
타고난 성정 상 그리 될 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귀엽고 카리스마 터지는 여인과
해사하고 맑디맑은 여인을 만날 때마다 눈에 오래 넣는다.
팔짝 벌려 큰소리로 인사하는 방법도 연습하고 조근조근,
귓속말하듯 위로하는 방법도 연습하면 나도 그리 될까 싶어서.
*소설가 김서령의 산문 <김서령의 우주서재>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있습니다. 원문이 더 좋으니 원문으로 찾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