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정릉 산보 ―최동호
새벽 언덕길,
사지가 굳어 거동이 불편한 아들에게
아침체조를 가르치는 젊은 어머니가 있다
좁은 산길,
중학생 영어를 암기하다 얼른 등 뒤에 책을 감추고
내려오는 중년여성이 있다
봄 언덕길,
꽃아 예쁘다 새야 반갑다
손뼉 쳐 햇빛 가르며 올라가는 꼬부랑 할머니가 있다
점심 산보길,
소풍 온 유치원 아이들
새처럼 포르르 날아오르는 노랫소리가 있다
저녁 산보길,
빛나던 대낮의 햇살들 다 서풍에 실어 보낸 나뭇잎들
이 실개천에서 반짝이며 놀던 물비늘 찾아오라고
초저녁 하늘 멀리 있는 별들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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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정릉 길에 젊은 어머니와 중년여성과 꼬부랑 할머니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기만의 삶을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원래는 길이 없던 곳인데 여러 사람이 자주 오가서 생긴,
조촐한 숲이나 들판의 작은 오솔길을 ‘disire line’, ‘희망선’이라고 한단다.
‘정릉 산보’는 몸의 산책일 뿐 아니라 가슴의 산책이기도 하다.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고 외로이 분투하는 이들을 향한 화자의 눈길,
화자의 발걸음을 따라 길이 나는구나.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시내버스를 타고, 정릉 숲에 가서 거닐어 보련다.
*황인숙(시인)의 책 <하루의 시>에서 따온 글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