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평소에도 24절기 챙기는 일을 좋아합니다.
절기는 태양이 걷는 스물네 보의 발걸음이고,
그에 맞춰 정처 없이 흐르는 시간에 스물네 개의 매듭을 묶는 것이어서,
함께 걷는 것을 좋아하고 매듭짓는 것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개념이에요. 물론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좋은
최적의 장소를 찾아 최상의 음식으로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챙기지는 못합니다.
태양이 직장인들을 위해 주말이나 휴가철에만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내딛지는 않으니까요.
최적의 장소들은 대개 자연을 찾아가야 하고,
최상의 음식들은 대개 제철 식재료를 구해 만들거나 만들어 파는 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그럴 여유와 여력이 없을 때가 많아서 자주 ‘편법’을 씁니다.
‘하지에는 맥주와 감자칩’을 챙기거나, 야근하느라 밤늦게 회사에서 풀려난 어느 동짓날에는
‘비비빅에 흑맥주!’를 챙기는 식으로요.
각 절기마다 일삼아온 편법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다면 누군가는
‘매 절기가 갖는 깊은 의미는 휘발된 채 요식으로 행위만 소비하는
어느 현대인의 얄팍함에 대한 사례집’이라고 한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책을 쓸 리도 없지만, 만약 한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렇게라도 절기를 되새기고픈 절박한 심정을 아시느냐고 항의하겠어요.
당장 최근에도 그랬습니다. 곡우에는 와인 이름도 ‘빗물’이고
와인 라벨 그림도 흘러내리는 빗물을 형상화한 스페인 와인을 마시고
청명에는 청명주와 봄나물을 먹은 뒤 별러왔던 화분 분갈이를 하고,
올해 춘분에는 춘분을 세상에서 가장 성대하게 보내는 멕시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를 ‘갖다붙여’
데킬라에 타코를 먹었어요.
이 ‘의미 갖다 붙이기’가 절기 챙기기의 가장 재밌는 포인트 같습니다.
엉뚱한 결론에 닿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확장에 이르기도 한다는 점에서요.
하지가 감자칩과 만나고 춘분이 타코와 만나는 무한 변주! 말입니다.
* 황선우, 김혼비의 책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에서 따온 글.
*중간에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하시고
개인sns 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