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29월 이지민 아나운서와 '좋은 아침 느낌' 나눠요~
그대아침
202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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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공감


쿠바의 산티아고, 쿠바에 머물던 일주일 동안 나는 마르꼴과 매일 인사를
나눴다. 그는 늘 정오쯤이면 내가 묵는 건물 아래층 식당 테라스에 앉아
닭고기와 감자를 먹었는데, 점심을 먹는다기보다는 맥주를 마시러 온다고
말하는 게 맞았다. 내가 인사를 건네면 정오부터 발그레해진 마르꼴은
매일 같이 내게 손 키스를 날렸다. 그는 점심부터 맥주를 마시기 시작해
날이 저물어야 겨우 자리를 떴는데, 그의 앞에 앉아 함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매일매일 달랐다. 하루는 옆 건물 빵집 주인,
하루는 그 식당의 웨이터, 하루는 거리의 악사,
하루는 어쩌다 그 앞에 앉아 있게 됐는지 모를 정도의 절세미인.
나도 산티아고에 온 첫날 그와 맥주를 마셨다.
마르꼴은 시시껄렁한 얘기를
할 뿐이었다.
얘기를 들어줄 누가 꼭 필요한 것도 반드시 얘기를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닌 듯했다. 그저 그의 콧수염이 쉴 새 없이
달싹이길
원하는 듯했고 하루에 두세 번쯤 호탕하게 웃고 싶은 듯했다.
그런 마르꼴은 늘 그 식당 앞을 스쳐지나가는 내게 물었다.
“지금 몇 시야?”

바쁜 일도 없이 늘 그 자리에서 술만 먹는 그가
대체 시간은 왜 묻는지 궁금했지만 나는 늘 성실히 대답해주었다.
사실 기억력이 안 좋은 그는 벌써 내 나이도 다섯 번이나 물었다.
식당 웨이터에게 마르꼴의 직업을 물었더니, 시계 수리공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시계를 고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수리점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시계가 없어
매일 나에게 시간을 물어보는 그가 시계 수리공이라니.
떠나오기 며칠 전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마르꼴의 시계 수리점이 바로
그 식당이라는 것. 그러니까 마르꼴은 내 시계가 잘 가고 있는지
늘 확인하고 있었던 거였다. 사실 여행자에게 있어 멈춘 시계는
가장 큰 골칫거리다. 내 시계가 맞지 않았다면 마르꼴은 날 불러 앉혀
돈을 좀 벌기도 했겠지. “지금 몇 시야?”
그와 헤어지던 저녁, 그는 또 내 시계를 확인했다.

아프리카의 도곤족은 말했다.
당신은 시계가 있지만 나에겐 시간이 있소!



*시인 정영의 책 <때로는 나에게 쉼표>에서 따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