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공감
나는 기묘한 위안을 주는 화젯거리를 한 가지 안다. 이런 질문으로 시작한다.
"혹시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Smells like teen spirit)’이 빌보드 핫 100에서 최고 몇 위까지 올라갔는지 아시는 분?”
록밴드 너바나의 대표곡이자 록음악을 넘어 대중음악을 바꾼 바로 그 노래,
위대한 팝음악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그 곡 말이다. 나와 어울리는 이들은 대체로 40대이므로 다들 이 노래를 안다. 10대 시절 좋아하건 싫어하건 엄청 들었을 것이다. “그 노래가 제일 인기 많았을 때 빌보드 핫 100 순위가 고작 6위였다”고 하면 모두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다. 엥? 그 곡은 30년 동안 전설의 자리에서 내려온 적이 없는데.
1991년에 듣자마자 바로 알았는데.
이건 몇 세대 뒤에도 잊히지 않을 노래라고, 정말 새롭고 독창적이라고.
그러면 나는 검색해서 확인해보라고 하면서 덧붙인다. “차트에서 1위를 하는 거랑, 시간을 버티는 건 완전히 다른 일 같습니다.”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더 들 수 있다. 나는 영화 ‘중경삼림’이 고전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보는데, 이 작품이 1995년 개봉했을 때 서울 관객은 12만여 명에 불과했다. 지금과 집계 방식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그해 한국 극장가 흥행 순위로 40위 안에도 못 들어갔다.
그렇다고 ‘중경삼림’을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부르려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외면받았던 적이 없다. ‘스멜스 라이크 틴 스피릿’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최고의 인기를 얻는 작품과 시간을 버티는 작품은 별개라는 거다. 뭐 모차르트라든가 마이클 잭슨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은 매정하다. 시간은 제법 괜찮은 작품과 시시한 범작을 구분하지 않는다.
정말 탁월한 극소수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다 녹여 없애버린다. 그런데 왜 나는 ‘시간’이라는 또 다른 ‘리그 주최자’가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는 걸까. 시간은 차분한 감식가다. 시간은 이유를 깐깐이 따진다. ‘유명해서 유명한’ 것들은 시간 앞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시간의 그런 특성이 어떤 고집쟁이들에게는 서늘한 격려로 다가온다.
* 작가 장강명의 <장강명의 마음읽기> 에서 따온 글이었습니다.
줄인 내용이니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 등에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