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16화 미선나무에게_슬픔에게_사랑에게
그대아침
202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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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선나무에게

                            김승희

이 봄에 나는
사랑을 고백하고 싶다
누구에게 못한 말을 누군가에게 하는 것처럼
1인분의 사랑의 말을 누군가에게 하려는 것이다
동백에게 못한 말을 매화에게
매화에게 못한 말을 생강나무에게
생강나무에게 못한 말을 산수유에게
산수유에게 못한 말을 산벚나무에게
앵두나무, 복숭아꽃, 살구꽃, 진달래, 철쭉에게

이 봄에 나는
누군가에게 해야 할 사랑의 고백을
어딘가에게 고백해야 한다
(중략)
어제의 비가 오늘의 비에게 편지를 쓰고
내일의 비가 어제의 비한테 편지를 쓰는 것처럼
눈물의 색은 똑같고
비 맞은 사람의 사랑의 고백은 끝이 없고.
밀양 덕천댁 할머니와 김말해 할머니가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듯이
또 위안부 할머니들이 세월호 유족에게
편지를 쓰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듯이
5.18 엄마들이 4.16 엄마들에게
편지를 쓰듯이

분홍미선, 상아미선, 푸른미선아
봄은 이어지고 이어져
우리 앞에 봄꽃들의 행렬은 끝이 없다
낙원도 이 땅이 버린 타락천사 같은
하얀 사과 꽃 같은
미선나무 물푸레나무 쥐똥나무가 차례로
수북한 꽃을 피우듯이
당신에게 못한 일인칭의 사랑의 말을
오늘 나는 또 누군가에게 꼭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