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만나는 일을 하면서도 나는 어린이가 ‘작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곤 한다. 예를 들면 독서교실에 새로 들인 화분이나 장식품을 보려고
어린이들이 까치발을 할 때 그렇다.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배치하는데도
제일 작은 어린이 기준에는 못 미칠 때가 있는 것이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 먼저 온 어린이가 나중에 오는 어린이를 놀라게 하려고
몸을 숨길 때도 마찬가지다. 교실이 조그마해서 내가 보기엔 숨을 곳도 없는데
어린이들은 감쪽같이 잘도 숨어서 일단 내가 먼저 놀란다.
덕분에 숨바꼭질은 몸집이 작아야 할 수 있는 놀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중략)
어린이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손을 드는 것은 운전자의 눈에 잘 띄기 위해서다.
몸집이 작아서 눈에 띄지 않을까 봐 조금이라도 커 보이려는 것이다.
대중교통의 좌석에 앉을 때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 어린이도 있다.
어른이 한 걸음 걸을 때 어린이는 두 걸음을 걸어야 한다.
어린이는 비 오는 날 투명 우산을 써서 시야를 확보한다.
어린이가 작은 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 현실적인 문제다.
(중략)
어린이가 일으키는 말썽, 장난, 사고의 많은 부분은 어린이가 작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는 어른을 보고 배울 기회가 필요하고
공공장소에서도 어린이는 마땅히 ‘한 명’으로 대접받아야 한다.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하지만 어떤 어른들은 그 사실을
깜빡하는 것 같다.
*작가 김소영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고 원문이 훨씬 좋으니 원문으로 확인하세요.
개인 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시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