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갈 일이 있어서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순환 버스를 타고 10분쯤 가면 광역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그런데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바람에 코앞에서 순환 버스를 놓치고 말았다.
20분을 정류장에서 기다리느니 그냥 걷기로 마음먹었다.
작년 가을 무렵 집 앞 산책로에 나무를 더 심고 공사를 해도 본척만척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사이 한쪽에 멋진 테이블과 그네의자까지 가져다 놓은 것을 나만 몰랐나 보다.
달리는 버스 차창 밖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생생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걸었다.
20분쯤 꽃구경, 하늘 구경, 나무 구경을 하다가 광역 버스 정류장에 도착할 즈음
약 올리듯 코앞에서 광역 버스를 또 놓쳤다.
하는 수 없이 벤치에 앉아 다음 버스를 기다렸다.
그사이 딱히 할 일도 없던 나는 두리번거리다가 내 발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자세히 보니 신발 뒤축이 터져 있었다.
버스를 놓치지 않았다면 벤치에 앉지도 않았을 테고, 내 발도 살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이 신발을 신고 200일 넘도록 매일같이 21층 계단을 올랐다.
내 나름대로 부지런히 살았다는 것을 터진 신발 뒤축을 보며 알게 됐다.
약속 장소 근처인 강남역 지하상가에 도착하자마자 운동화를 새로 사서 신었다.
예전 같으면 내가 신었던 신발이 불쌍하다고 비닐에 담아 가방 안에 도로 넣어 집으로 가져왔을 거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가게 주인아주머니께 잘 버려달라고 부탁하고 나왔다.
'안녕, 잘 가. 그동안 고마웠어. 수고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 신발 뒤축도 모르는 인생.
새 신발이 나를 어떤 새로운 곳으로 이끌지는 모르겠지만 즐겁게 다녀볼 생각이다.
시작하는 마음으로 또다시 신발 뒤축이 터질 때까지 말이다.
*김리하의 <내가 유난히 좋아지는 어떤 날이 있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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