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꽤 재미있는 물건을 샀다. '리마커블Remarkable'이라는 태블릿인데,
간단히 말하자면 필기 기능만 있는 이북e-book 기기다.
하나의 물건이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 또 하나의 세계가 함께 따라오기 마련.
새 장난감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다 보니 다양한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간다.
역시 나를 키우는 건 8할이 소비다.
사실 이 물건에 매료된 것은 상세 페이지의 스펙 때문이었는데,
그 스펙이 속된 말로 '빵빵'하기보다는
요즘 시대의 진보된 기술을 고려했을 땐 오히려 상당히 빈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그 부분을 강조한 점이었다.
- 우리 기기는 소셜 미디어도 안 되고, 이메일도 안 됩니다.
그저 당신의 생각에 집중하기만을 돕죠. 읽고 쓰는 것만 됩니다.
'만only'라는 조사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다가온 경우가 또 있었던가.
안 된다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도 기분 좋은 건 또 처음이다.
“이것도 되고요, 저것도 됩니다!”라고 서로 아우성치는 첨단 기기 시장에서
당당하게 “저희는 딱 이것만 됩니다”라고 말하는 게 어찌나 쿨하게 느껴지던지.
어쨌거나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면 이렇게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해 버려도 되는 것 아닌가?
다재다능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가고 있는 세상,
모든 걸 잘하고 싶어 안달 난 나에 대한 어떤 일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모래를 가득 움켜쥔 손에서 모래가 손가락 틈으로 흘러내리듯,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싶어서 수많은 것을 그러쥔 손에 남은 것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옆 사람만큼 잘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것저것 하다가 정말 내가 잘하고
나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점점 잊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오늘도 사물로부터 배운다.
*김규림의 <매일의 감탄력>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