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213목 마음이 나를 만드니 긍정을 품어라
그대아침
2025.02.13
조회 203
양지에 발을 들이는 일이 내겐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가족이든 사랑이든 생각이든 바르고 멀쩡하게 생긴 것,
온화하고 근사한 것, 떳떳하고 따뜻한 것, 좌우대칭에 맞춰 균형을 이루는 것이 힘들었다.
음악으로 말하자면 언제나 단조인.
장조로 흘러가다가도 정신 차리고 보면 여전히 단조를 노래하는,
낮은음자리표와 16분쉼표들의 숨가쁜 행진. 
전깃줄로 말하자면 얼키설키 얽혀 참새들이 앉기 싫어하는 자리. 
방으로 따지자면 볕은 가난하고 곰팡이만 승승장구 번식하는 곳.
이를테면 나는 서자, 변방, 덤, 가시랭이, 꽃받침, 맹장 같은 존재다. 
중심이나 주인공이 아닌, 원래 있으면 안 되는 것이 불룩 생긴 것. 
그러나 나쁘지만은 않았다. 봄은 공평하니 낮고 음침하고 축축한 곳에도 내려와
간혹 고개를 쳐든 음지식물들과 마주하기도 하니까. 
‘곰팡이도 꽃처럼’ 피어나는 거니까.

삶에 있어 영원한 양지도 영원한 음지도 없다.
걸음걸이가 땅을 만든다. 운동화를 신고 마른 흙길을 걸어가다 보면 알 수 있다.
짜부라진 개구리나 백발을 휘날리며 시드는 중인 할미꽃, 흙탕물에서 꼬물꼬물 뒹구는 올챙이, 
자동차 바퀴에 옆구리가 터져 죽은 새끼 뱀도 제각각 자기 구역에서 열심히 살았다.
죽고 사는 건 모두 팔자소관. 주어진 제 몫을 열심히 살아내기만 하면 된다.
걷다가 운동화에 묻은 마른 흙을 털고, 맨발과 젖은 뿌리를 공들여 말리면 된다.
양지바른 길에서 둥근 무릎을 쉬게 하면 된다.

생각대로 되는 것이 없는 삶에 싫증이 나
어느 날은 헝클어진 머리를 쥐어뜯으며 술에 취하기도 하겠지만
어쩌랴, 휘청휘청, 기필코 내게 기어오겠다는 기다란 뱀 같은 팔자를 긍정해야지!
즐겁게 피리라도 불며, 환영해야지.
뱀이라, 이왕 뱀이라면 제대로 길고 축축한 뱀으로 오너라! 
삶이여! 똬리를 튼 내 모양을 잘 보거라. 나는 행복한 독을 품은 뱀이란다!


*박연준의 <소란>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