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은 텀블러를 지참해 출근한다.
지구의 미래를 위해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보겠노라는 결심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남편의 텀블러를 세척할 일이 생기는데
이상하게 내가 만지기만 하면 뚜껑 쪽 부품 하나가 빠지는 거였다.
이거 또 이러네, 고개를 갸웃하니 남편이 그런다.
“또? 하여간에 가시손이라니까.”
가시손이라니,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지거나 때리는 느낌이 찌르는 듯한 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북한말이라는데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아무거나 만지기만 하면 뭐든 잘 고장내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어려서부터 유명했다. 언니 옷이나 신발을 몰래 착용하고 외출한 날엔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다고 한다.
이왕 억울한 김에 가시손의 동지들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가장 먼저 영화 <겨울왕국>의 엘사가 떠오른다.
엘사는 만지는 것마다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무서운 손을 가졌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 장갑 끼고 얼음성에 갇혔지만
동생 안나의 활약으로 봄의 왕국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시손의 주인인 나는 엘사에 극도로 감정이입을 한 나머지
극장 불이 켜진 뒤에도 얼음성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문득 가시손의 반대말이 궁금해진다. 아마도 쓸어 담고 쓰다듬고 치료하는 손이겠지?
다행히 세상엔 가슴팍에 청진기를 대고 숨소리를 듣거나 진맥을 짚어
영혼의 상태를 살피는 손도 존재한다. 내가 무수한 나들의 총합이듯이
나의 손안에도 무수한 손들이 자리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시손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한평생 파괴지왕으로만 살아야 하는 건 아닐 터.
연습하는 손은 게으른 손을 이길 것이고 호기심 가득한 손은 나태한 손을 앞설 것이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당신은 어떤 손을 가졌습니까.
그 손안엔 무엇이 있습니까. 따뜻합니까.
*안희연의 <단어의 집>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