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거실 블라인드를 올리다가 쏟아지는 햇살에 멈춰 섰다.
감탄사처럼 어떤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먼 데서 봄이 온다.'
'먼 데서'라는 말이 인상 깊다고 생각했던 문장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더듬어보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생각났다. 커튼이었다.
스물두 살 무렵 대학생이 된 남동생과 함께 살게 되었다.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집을 얻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살아 보니 이렇게나 웃풍이 센 집이 없었다. 잘 때마다 코끝이 시렸다.
집을 처음 본 엄마는 가만히 둘러보기만 할 뿐 말이 없었다.
창문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도시에서도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네' 하고 웃을 뿐이었다.
이불을 둘둘 말고 셋이 달라붙어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내리쬐는 창문을 보며 엄마는 말했다.
“아무래도 커튼은 있어야겠다.”
엄마는 눈곱도 안 뗀 우리에게 한지와 유성매직을 사 오라고 했다.
사 온 한지를 창문에 대고 너비를 가늠하더니 이걸로 커튼을 만들거라고 했다.
엄마는 방바닥에 한지를 깔더니 이렇게 말했다. "우리, 여기에 시를 쓰자."
황동규 <즐거운 편지> 김종해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김용택 <꽃>
시를 모두 적었을 때 엄마는 냅다 한지를 구겨버렸다.
엄마는 이걸 창문에 붙일 거라고 했다.
동생과 나는 의자 위에 올라가 한지 양 끄트머리를 붙잡았다.
엄마가 적당한 위치를 봐주고 창문마다 한 장씩 시를 붙였다.
그렇게 완성된 우리의 시(詩) 커튼.
그걸 바라보는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한지 몇 장으로 추위를 막을 순 없다. 그래도 좋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 셋 손길이 닿은 시가 하늘에 걸려 있을 것이다.
읽고 또 읽겠지. 겨우 몇 줄의 문장에 불과한 글자들이 우리에겐 따뜻함이 되겠지.
시를 껴안고 쏟아지는 햇살이 나른했다.
우린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밥은 미루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긴 늦잠을 잤다.
*고수리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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