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신의 그대와 여는 아침

음악FM 매일 07:00-09:00
0420월 내가 만든 모순 속에 갇힐 때 스스로 되뇌어요, '그럴 수 있지'
그대아침
2026.04.20
조회 163
가끔 내가 모순덩어리처럼 느껴진다. 부산에 20년 넘게 살았지만,
정작 바다에서는 1시간 거리에 살아서 자주 가지도 않았고, 바다를 보는 것은 좋아하면서도
물 공포증이 있어서 어릴 적 수영 교실에 가는 날이면 매일 울기만 했던 아이.
그러면서도 여행은 또 바닷가를 좋아하는 아이러니. 이뿐이겠는가.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특히 스페셜티 커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이런저런 카페를 다니며 다양한 원두를 경험해 봤지만, 정작 그 맛을 제대로 구별하지도 못한다.
그러면서도 비싼 원두는 또 쟁여놓는데, 막상 집에서는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는 일이
귀찮아서 비싼 원두가 무색하게 커피 메이커로 간편하게 커피를 내려 마신다.
별일 아닌 것으로 보여도,
내 안의 모순을 느낄 때마다 자기 연민에 빠진다. 

전에 직장 후배가 개인적인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요청했다.
오랜 꿈을 잠시 미뤄두고 직장생활을 하던 후배는, 다시 꿈을 찾아가는 게 좋을지 물어왔다.
때마침 나도 비슷한 생각으로 고민하던 참이었다.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후배에게는 어찌나 좋은 말들을 잘도 늘어놓았던지.
아직 그 나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나이라고 할까 말까, 고민할 때는 그냥 지르고 보라며.
저지르는 것 없이 고민만 하고, 언젠가는 잘 되겠지, 라는 막연한 미래에 기대어
하루하루 무탈하게 살아내는 데만 급급한 나에게 하는 말.
누군가의 삶에
입을 대는 것처럼만 살아냈더라도,
말하는 만큼만이라도 살아냈다면
내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럴 수 있지.”
내가 자기연민에 빠질 때마다, H는 늘 말했다. 그럴 수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그게 뭐 중요하냐는 듯. 무관심해 보일 수 있는
말투였으나,
결코 무심하게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였다. 

어떤 인생이든 그럴 수 있다는, H 특유의 이해였다. 그런 무심한 이해가 마음에 들었다.
이해받는 행위가 좋았다. 나조차 날 이해할 수 없을 때마다, 그 때문에 사는 게 불안하고
두렵고 또 왜 이렇게 사는가 싶어질 때마다. H의
대답은 명쾌했다.
그럴 수 있지. 그럼 나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이해할 수 있었다.
걱정이 사라졌고,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내가 만든 모순 속에 갇힐 때가 있다. 스스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자책하고 원망한다.
그런 생각을 멈추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 되뇐다. 그것으로 모자라면,
H에게 연락해서 내 마음을 털어놓곤 한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H의 대답.
“그럴 수 있지.”


*진수빈의 <계절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