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한편에 사탕 더미가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이걸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고,
그렇게 사라진 사탕 더미는 다음 날 다시 채워지죠.
바로 현대 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의 <무제>라는 작품입니다.
사실 토레스에게는 8년이나 함께한 연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그는 큰 상실과 슬픔에 빠지게 되었지만
연인이 세상을 떠났다고, 사랑 역시 끝나버린 걸까요?
토레스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마침내 이 연작을 시작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건 사탕 더미의 무게입니다. 정확히 79.3킬로그램이죠.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관람객들은 사탕을 가져갔고,
그렇게 부족해진 사탕의 무게는 매일 아침 다시 채워집니다.
사탕 더미의 무게인 79.3킬로그램은 바로 작가의 연인의 체중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연인을 갈라놓을 순 있다
(작품이 전시되는 동안 사탕이 사라지는 것).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 회복되고 영원히 기억되고
이어지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매일 아침사탕의 무게가 다시 회복되어 채워지는 것).
작가는 연인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자신을 해치는 대신, 상실마저도 예술로 승화시켜
자신들의 사랑을 더욱 아름답게 빛냈던 것입니다.
몇 년 전, 소확행이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
우리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사실 거창한 것들이 아닙니다.
일상의 작은 기쁨들이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연인이나 친구와 나누는 대화,
계절이 느껴지는 바람 같은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다면, 우리는 인생의 덧없음에
좌절하는 대신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겁니다.
서로 몰랐던 사람이 둘도 없는 연인이 되고 친구가 되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에 의미가 생길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나게 되는 법이니까요.
일상을 빛나는 사랑으로 채워나갈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
<잠의 변주>에 나오는 한 문장을 건네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는
길이 없고 막막하다고 느낄 때
사방이 막혀 있다고 느낄 때
나의 좁다란 마음에 커다란 우주를 달라고 빌었다.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사랑하게 되니 그에게 우주가 생겼다.
*전승환의 <당신이 내 이름을 불러준 순간>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