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 언니가 해준 콩나물밥이 너무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 애가 있다.
정작 나는 뭘 해줬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그땐 오랜 수험 기간 중이어서
멀리 나갈 시간이 없었고 후배한테 비싼 밥을 사줄 돈도 없었다.
괜찮다면 집으로 오라고 했다. 밥 안 먹었으면 들러서 한 숟갈 먹고
같이 이야기나 하다 가라고. 사치스러운 재료나 특별한 레시피도 없이 평소에
내가 먹는 밥에 숟가락 하나 더 놓았다. 와준 마음이 고마워서 그 애가 소중히 들고 온
마카롱의 색깔을 오래 기억했는데, 상대는 따뜻한 콩나물밥을 오래 기억했다.
같이 먹은 음식은 함께 나눈 기억이 된다. 영화 <남극의 셰프>에서 남극 기지 대원들은
매일의 식사에서 큰 기쁨을 느낀다. 가족과 떨어져 느끼는 정신적 허기를 달랠 만한 것이
음식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고된 하루를 보내고 함께 따뜻한 저녁을 나누며
동료애를 단단히 쌓는다. 그들은 이내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허기를 달래는 사이가 된다.
푸드 라이터, 나이젤 슬레이터(Nigel Slater)의 유년기를 다룬 영화 <토스트>에서
소년 나이젤이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던 다 태운 대구 요리가 괜히 마음을 끄는 이유라던지,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서 별것도 아닌 사소한 요리가 추억을 일깨워 관계를
다시 잇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네가 밥먹자고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사랑은커녕 만날 수도 없었을 거라고. 용기 내줘서 고맙다는 뜻이었다.
밥 먹자는 말은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 같은 것이다.
내가 먼저 그런 말을 건넸을 때도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였다. 다만 마음을 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은 낯섦과 부딪힘을 동반하는 사건이어서 종종 두려웠다.
누군가에게 밥먹자는 말을 건네기를 망설인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을 망설인 태도였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먼저 밥 먹자는 말을 꺼냈기 때문에 우리는 마주 앉을 수 있었다.
때로는 마침표를 찍는 의사 표시보다 관계의 물꼬를 트는 행동이
더 넓은 미래로 향하는 문을 연다. 오늘 우리가 마주 앉은 테이블은,
당신과 나 사이에 새로운 형태의 '우리'라는 단어를 만드는 예술이 될지도 모른다.
활짝 열린 가능성이 그곳에 있다.
*김지연의 <등을 쓰다듬는 사람>에서 따온 글.
줄인 내용이 많습니다. 원문으로 확인해 주시고
개인SNS등에 그대로 옮겨가지 말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