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이 자연스레 숲길을 향한다. 죽은 나무들 사이에서 무엇인가 퍼덕거리더니 새 한 마리가 날아간다.
한쪽 날개 길이만도 일 미터는 족히 될 커다란 회갈색 새다. 날개가 커서인지 너울거리는 날갯짓이
마치 느리게 돌아가는 영상 같다. 느릿느릿한 리듬을 타는 날개의 율동을 지켜보는 동안
그 둔중한 움직임이 내게까지 전해오는지 뇌의 활동도 더뎌진 느낌이다.
제 아래 펼쳐진 세상을 넉넉한 품에 넣으려는 듯한 날갯짓을 눈과 마음으로 부지런히 따라갔다.
내가 보았다고 느끼는 새가 허상이든 실상이든, 그 여유로운 비행을 닮고 싶었을 것이다.
여유 있는 삶은 넉넉하고 느긋하다. 느긋한 사람은 평화롭고 삶에서 좀처럼 불협화음을 내지 않는다.
나는 그런 마음 공간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따라 걷다 보니 키 큰 나무 사이의 어둑한 곳에 흰꽃이 밭을 이루며 군집해 있는 게 눈에 띈다.
무슨 꽃일까. 처음 보는 꽃이다. 사진 속에서나 만나던 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를 상징한다는
트릴리움(Trillium), 꼭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늘 다니던 숲에서 첫 만남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을
못해서인지 흥분한 심장이 북소리를 낸다. 그윽한 백합 향을 품은 자그마한 꽃잎은 외양도
백합만큼이나 우아하고 청초하다. 고집스럽게 최소한의 꽃잎과 이파리만을 허락하는,
단순하면서도 품위 있는 삶의 상징 같아 예사롭지 않다.
트릴리움은 개미가 그 열매를 좋아하여 그들이 먹고 버린 씨에서 발아하는 꽃이라고 한다.
처음 씨앗에서 꽃이 피기까지 십 년 가까이 걸린다니, 하나의 생명을 키우기 위해
온 우주가 마음을 모은다는 말에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잎이나 꽃이 훼손되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여 다시 꽃을 올리기까지 무려
일곱 번의 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한 송이 꺾어 들고 싶던 마음이 잠시 흔들린다.
숲에 살면 모두 여유로워지는 것일까. 새도 꽃도 느긋한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인다.
느긋한 날갯짓으로 넉넉함을 보여준 새와 단순한 삶을 가르쳐준 꽃과의 만남은
내게 향기로 오래 남을 것이다. 봄을 수십 번 거듭 맞이한 나는 어떤 꽃을 몇 번이나 피웠을까.
*김영수의 <시간의 기차 여행>에서 따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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