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 8 (월) 살얼음에 대하여
저녁스케치
2025.12.08
조회 162


우리는 태어난 게 아니라
도착한 거예요.
추운 생명으로 왔지요.
추운 몸으로 왔어요.
그때가 아마 늦은 밤이었지.
북극의 생모(生母)가 찾아왔어요.
눈 포대기에서 보채는
동생들을 안고 얼음을 짜 먹이며
얼음의 말로 말을 가르치듯.
이 밤 어느 웅덩이에 고여 있을
그대들.
수없는 밤 고여 있었을 그대들.
머리맡에 밤바람이
주저리주저리 한 말.
그 밑바닥 말.
바닥에 가 닿은 말.
그대를 잉태했던 북극의 어머니가
평생 물걸레질한 그 얼음 바닥의
무늬가 손금에 박힌 것처럼.
굴복할 수 없는 무의 물결처럼.
궁핍처럼 스스로를 더 강하게
얼려야 하는 얼음처럼.

조정권 시인의 <살얼음에 대하여>

인간이 추운 생명으로 이 세상에 왔다는 말,
고독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이란 말일 테지요.

그렇다고 홀로 살아가는 의미는 아닐 겁니다.
외로움을 녹이는 건 또 다른 추운 생명.

그래서 사람 ‘인’은 서로 기댄 형상을 하고 있지요.
그러니 나는 나, 너는 너, 선 긋지 말고 ‘우리’로 살아요.

우리가 된 순간 사르르 살얼음은 사라지고
따스한 마음의 봄날이 시작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