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저녁이 좋다
깃털처럼 부드러운 어스름을 앞세우고
어둠은 갯가의 조수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딸네집 갔다오는 친정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오기도 하는데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
벌레와 새들은 그 속의 어디론가 몸을 감추고
사람들도 뻣뻣하던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가며
하늘에는 별이 뜨고
아이들이 공을 튀기며 돌아오는
골목길 어디에서 고기를 굽는 냄새가 나기도 한다
어떤 날은 누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돌아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내 그것이 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라는 걸 안다
나는 날마다 저녁을 기다린다
어둠 속에서는 누구나 건달처럼 우쭐거리거나
쓸쓸함도 힘이 되므로
오늘도 나는 쓸데없이 거리의 불빛을 기웃거리다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이상국 시인의 <저녁의 노래>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주는 저녁이 좋죠.
작고 초라해도 돌아갈 집이 있어 좋고,
어느 집 구수한 된장찌개냄새와
창밖으로 스미는 노란 형광등 불빛이
다정한 풍경을 전해주는 것 같아 좋고,
어깨에 힘을 풀고 조금 바보 같아져도
가로등 뒤로 살포시 숨겨줄 거 같은...
그냥 가방 뚝 떨어트리듯
다 놓아버릴 수 있는 이 저녁이 참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