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린 오후 수북이 자란 풀밭을 지나다가
싱그런 향기에 발을 멈춘다
멀리서만 보던 풀을 고개 숙여 본다
밟기만 하던 풀,
드러누우면 침대가 되고
뛰어놀면 운동장이 되지만
개미에게 집을 주고
지렁이에게 먹이를 주는 풀,
바람 불면 넘어지고
비 오면 고개 숙여 더 낮아지는 풀,
다 자란 자식 잃고
밤새도록 기도로 몸을 낮추던
단 칸 방 김 노인
텅 빈 가슴에
아침 햇살 쏟아지면
파릿파릿 얼굴을 편다
깎고 깎아도 다시 솟는 풀처럼
상처 먹고 사는지 멀리서도 여윈 팔을 흔든다
오월의 하늘은 저리 높은데
풀 한 포기 만나는 일은
고개를 숙여야 한다
유상옥 시인의 <풀 한 포기 만나는 일>
나무 위에 벚꽃은 보여도
바닥에 납작하게 자란 풀들에는
크게 눈길이 가지 않습니다.
잡풀이라해도 소중한 봄의 생명인데
눈 아래에 있으면 잘 보이지가 않지요.
이 봄에는 고개를 숙이고 자세를 낮춰 볼까봐요.
그곳에서 놓치고 살았던 뭔가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