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은 걸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를 느꼈다
발바닥이 지면과 맞닿아
땅을 딛고 서 있을 때
발은 발다웠다
걸어야 한다는 의욕에 불타올랐다
깁스에 결박당해 있던 지난 며칠 동안
발은 발이라기보다 한낱 석고에 지나지 않았다
걷는 일이야말로 발의 본분이며 진보이고
또한 최소한의 도리이며 사명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깁스를 풀고 오른쪽 발을 바닥에 내딛는 순간
묵직한 지면이 발바닥을 자극하며
발에 힘이 실렸다
중력을 받들어
꾸욱, 바닥에 바닥을 포갰을 때
지구를 들어 올리는 힘의 중심이 되었다 발은,
멈췄던 길을 다시 부른다
눈앞에 지도가 펼쳐지듯 걸어서 가야 할 길들이 어서 오라 그의 발을 끌어당긴다
왼발, 오른발, 왼
발은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아무리 가보고 싶어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는 것도
발바닥에 지문처럼 새겨두었다
새들이 먼 하늘을 날 때 희열을 느끼듯
발은 먼 길을 여행하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때 걸음이 가벼웠다
조경희 시인의 <발의 본분>
평소에
발은 특별히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편에 속하지만
발이 건강하지 않으면
우리가 이따금
‘어디론가 떠나야 겠다’는 생각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되죠.
언제든, 어디로든
나의 길을 열어주는 발의 소중함,
다시 느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