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을 오르면 산을 오른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가장 편안한 어린 시절의 우리 아버지의 등이거나
할아버지의 등이다
밖으로 나가 일하시다가 돌아 온 아버지는
언제나 그 등을 내게다 허락 하시고
나는 세상을 나가지 못했지만 그 등을 타면서
세상은 따뜻하고 든든 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방에 계시던 할아버지는 재떨이에
담뱃대 톡톡 터시고 기침 몇 번 하시고 난 뒤
담뱃대 높이만한 굽은 등을 내게 주셨다
등에서 내려와 본 세상은 사랑방만 하지만
시시각각 끓는 사랑방 온기로 하여
세상은 아침에서 한밤까지
가득가득 끓는다는 생각을 했다
무등을 오르면 산을 오른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세상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등이
산으로 솟아있고 나는 그 따뜻한 등을 등으로
오른다고 생각을 한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싶을때
산은 억새풀 무더기로 쓸리고 쓸리는 소리
내게다 허락하고
할아버지 기침 소리 듣고 싶을때
산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 아래로 내려 보내고
내려가다 남는 소리 내게로 허락한다
아, 세상은 나날이 가파르고 언덕배기 작은 골에도
숨이 막히는데 숨이 차고 차서 넘칠때
나는 등을 오른다 등에서 세상은 들녘처럼 편안하고
등에서 세상은 제일 낮은 사람의 목소리
대샆을 돌아 겨우 겨우 돌아 나오는 바람소리를 낸다
그 바람소리
눈물이 나는 소리 같지만 내 어머니의 치마
치맛자락에 얼려있는 내 어린 시절의 꿈이거나
우리 가문이 키워내는 가풍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등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등 아래 사는 사람들의 눈 높이로 흐르거나
그 높이로 흐르는 굽 낮은 하늘 바라보는 자리,
무언의 자리이리
하늘에 구름이 무리지어 흐르고
무등은 그 자리
한 번도 어디론가 떠나가지 않고
우리집 종손이신 아버지처럼
또 할아지처럼 등으로 말하고 등으로 살고 있다.
박정이 시인의 <무등산 오르기>
어릴 적 느꼈던
부모님의 품처럼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
나에게 해될 것들은 모두 막아줄 것 같던 든든한 공간이
지금도 하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 지치고 힘들 땐
부모님의 따뜻한 품,
넓은 등이 참으로 그리워집니다.